[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요즘 어딜 가나 ‘태양의 후예’ 이야기다. 30대 중반 방송 관계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태양의 후예’ 이야기를 하니 안 보면 대화가 안돼 뒤늦게 챙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후반 방송 관계자 역시 “단체 카톡방에선 송중기에 대한 찬양이 끊이지 않는다. 대사가 너무 오글거리는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데, ‘태양의 후예’에 대한 싫은 소리를 꺼내기도 무섭다”고 말했다. 안 보면 소외 당하는 드라마. 신드롬의 이면엔 ‘집단문화’ 정서가 바탕했다는 방증이다.
그러자 ‘꿈의 시청률’을 넘었다. 지난 24일 방송분은 전국 기준 31.6%, 수도권 기준 33.3%(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했다. 여성 시청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통해 거둔 성과다.
드라마는 ‘우르크’라는 가상의 땅에 파병된 군인과 의사의 사랑을 다뤘다. 주인공은 송중기 송혜교, ‘송송커플’이다. ‘시크릿가든’, ‘상속자들’(이상 SBS)을 쓴 ‘흥행보증수표’ 김은숙 작가가 만났다. 거기에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국경없는 의사회’를 쓴 김원석 작가가 힘을 보내며 ‘재난 멜로’를 완성됐다.
‘태양의 후예’를 지탱하는 ‘팔 할’은 멜로다. 남자 주인공 송중기(유시진 역)는 드라마 인기에 막대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태양의 후예’의 인기비결은 “로맨스에 대한 환상을 제대로 충족시켜주는 드라마”라는 데에 있다고 봤다.
사실 지난 오랜 시간 ‘멜로 강박증’은 지상파 드라마의 고질병으로 꼽혀왔다. 사극도, 전문직 드라마도, 청소년 드라마도 결국 ‘기승전멜로’로 이어졌다. 구태의연한 작법에 시청자들의 비아냥이 끊이지 않았다. 야심차게 새로운 시도를 한다 해도 제작 여건 등의 문제로 “기존의 정형화되고 상투적인 멜로”(윤석진 충남대 교수)로 전개됐다.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국 PD는 “시청률이 저조하면 간부들의 개입이 시작된다. 멜로나 자극적인 설정 등 시청률이 잘 나올 만한 정형화된 문법을 넣으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의사가 사랑하고’, ‘변호사가 사랑하는’ 드라마가 난무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태양의 후예’는 ‘재난’이 붙었으나, 당차게 ‘멜로’로 승부를 본 드라마다. “기승전멜로로 향할 일이 없으니 멜로에 대한 강박을 벗을 수 밖에 없다”(윤석진 교수)는 시각이 나온다. 한 방송사의 드라마국 PD는 “결국 같은 멜로라도 장르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캐릭터,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과 전개의 힘이 더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정형화된 장르를 떠나 ‘태양의 후예’는 잘만 만들면 얼마든지 흥행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완성도가 생명이다”라고 말했다.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를 풀어가고 여성 시청자의 판타지를 구현시키는 데에는 김은숙 작가의 공이 혁혁하다. 멜로를 타고 살아난 남자 캐릭터들은 여성의 로망을 건드리기에 충분하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송중기가 연기하는 유시진, 거친 상남자라고는 하나 진구가 연기하는 서대영은 요즘 유행하는 츤데레 캐릭터”라고 봤다. 겉으론 무심한 듯 하지만 내 여자에게만큼은 진심을 다 하는 남성상으로, “여성들의 로망이 완벽하게 구현된 캐릭터가 유시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이상적인 남성상이 제시되고. 멋진 남자가 나와 복잡하고 답답하게 빙빙 돌리지 않고 직진 멜로를 보여주는 것이 판타지를 건드린다”고 설명했다. “이 시간 이후 내 걱정만 합니다”,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와 같은 유시진의 대사가 그렇다.
드라마에 출연 중인 배우 진구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태양의 후예’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송송커플의 멜로와 대사의 재밌다. 피식피식 웃게 만든다. 김은숙 작가의 힘이다”라며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여배우,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남자배우가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엉뚱한 말을을 해주니 대리만족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거기에 “두 남자의 브로맨스가 더해지니 여성 시청자의 입장에선 남녀 커플은 물론 남남 커플까지 덤으로 볼 수 있는 시각적 즐거움”(윤석진 교수)이 있다.
‘송송커플’과 더불어 신분의 벽에 가로막힌 사랑에 한창인 ‘구원커플’ 진구 김지원의 로맨스를 응원하는 시청자도 적지 않다. 드라마의 70% 이상은 송송커플의 모습을 담지만 현실에 없을 것 같은 ‘신계’ 커플보다 현실적인 ‘인간계’ 커플이 도리어 공감을 사기도 한다.
‘태양의 후예’가 풀어놓은 두 커플의 멜로에선 김 작가 특유의 로맨스와 감성이 잘 살아난다. 물론 진부한 설정도 많다. 남녀 주인공이 어렵사리 성사되는 첫 만남, 오해가 쌓이거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고백을 하는 등의 연애 전 과정들은 여느 드라마에서 익히 봐왔던 장면들이다.
이 같은 진부함에도 드라마를 더욱 특별하게 매만지는 것은 멜로 위에 뿌려놓은 다양한 장르에 있다. 윤석진 교수는 “드라마는 멜로를 기본으로 하면서 액션, 의학 등의 장르적 특성을 골고루 배치하며 시청층위를 넓혔다”라며 “이 부분이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서사전략을 취했다”고 분석했다.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특전사 대위가 의사를 데리러가기 위해 헬기를 띄우고, 비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극적인 장면들을 만든다. 이 모든 상황을 리얼리티로 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철저하게 로망을 자극하는 요소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하재근 평론가는 “스토리의 치밀함보다는 판타지가 더 중요한 드라마”라고 말했다.
다만 ‘태양의 후예’가 ‘재난 멜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재난과 멜로의 균형을 맞췄는지에 대한 의문은 나온다. “재난서사와 멜로서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보진 않는다”(윤석진 교수), “재난멜로라고는 하나 재난이 잘 표현되진 않았다”(하재근 평론가)는 지적이 있다. 윤석진 교수는 “‘태양의 후예’는 김은숙 작가의 장기가 너무 세기에 드라마 원작이 가진 재난서사, ‘국경없는 의사회’와 관련된 부분이 이질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라며 “재난과 멜로가 현재까진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한 쪽을 위해 배경으로 설정한 것인지 아닌지 향후 전개과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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