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리다” 입에 달고 사는 직장인 평균 수면시간 불과 ‘6시간 12분’ “남보다 덜 자야 성공” 강박도 한몫 수면장애 환자 4년새 46% 급증
#. 3년차 직장인 김정봉(28ㆍ가명) 씨는 ‘졸리다’,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야근과 회식이 일상이라 그렇다고 믿고 있다. 회사에서 ‘출근시간’은 모두 칼같이 지키지만, ‘퇴근시간’을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하루 평균 커피 3잔으로 쏟아지는 잠을 쫓고, 늦게까지 회식이 이어진 다음날엔 에너지 드링크 음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평일 수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보니 김씨는 주말만 되면 보통 오전 10시가 넘도록 늦잠을 잔다.
‘피로사회’에 사는 한국인들의 수면 시간이 크게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 잠을 많이 자는 것이 게으름의 상징이나 죄악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한국인들이 학창시절부터 듣게 되는 ‘4당5락’(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란 괴상한 단어는 뇌리 속에 강하게 박혀 삶 내내 ‘남보다 덜 자야 성공한다’는 인식이 계속된다. 실제로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란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49분으로 조사대상 18개국 중 장 짧다. OECD 평균(8시간 22분)보다 33분이 짧다.
조사 대상을 성인으로 좁히면 수면 시간은 더 줄어든다. 한국갤럽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만 295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53분이다. 직장인으로 범위를 더 좁히면 6시간 12분(취업포털 잡코리아 조사), 고교생의 경우 5시간 30분 내외로 알려져 있다. 미국 수면재단(NSF)이 발표한 성인 권장 수면 시간(7~9시간)은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다.
이같은 수면 부족은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을지대와 연세대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하루에 7시간 미만 잠을 자는 청소년은 7시간 이상 자는 학생보다 자살 생각 1.5배 높았다.
또 취침시각 11시, 기상시각 7시일때 자살 관련 행동을 가장 적게 보였다. 몇년 사이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급증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 통계에 따르면 불면증 등 수면 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수는 2009년 26만여명에서 2013년에는 38만여명으로, 4년새 46%가 늘었다.
수면이 불규칙한 교대근무자들 역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쉽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교대 근무를 하는 직장인의 24%는 불면증, 32%는 주간졸음을 겪는다. 53%는 수면 부족을 겪는다고 한다. 야간 교대 근무를 6~14년 해온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사망률이 11% 높았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수면 부족 문제 해결은 ‘잠’의 가치를 재평가하는데서 시작한다고 조언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인들은 옛날부터 ‘근면성실’에 대한 문화적 강박관념이 깊숙이 새겨져 있다”며 “잠을 자고 쉬는 것에 대한 가치가 너무 낮게 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두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