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통화기금은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액이 5년 뒤에 일본과 비슷해지고, 구매력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액은 3년 뒤면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일간의 국가력, 경제력, 생활력을 이 지표가 대신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 의미는 담고 있다할 것이다. 이를 두고 김영욱 금융연구원 자문위원은 컬럼에서 “우리 경제가 일본을 앞지른다니 고지가 바로 저기 아닌가”라고 썼다.

해방 후 우리나라와 일본 간에 1인당 국내총생산액 격차가 정점을 이룬 시기는 박정희 정부 초기로 보여진다. 1965년에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액은 우리나라의 8.8배였다. 이후 점점 낮아져 1975년에 7.4배, 1985년에 4.8배, 1995년에 4.1배, 2005년에 2.2배로 좁혀지더니 올해는 1.37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임진왜란 이후 1965년까지 적어도 365년 동안은 일본이 우리와의 경제력 격차를 벌려왔던 시기다. 그러나 1965년 이후 2015년 까지 50년간은 우리가 일본과의 격차를 좁혀왔다. 국제통화기금 전망대로라면 1965년으로부터 55년째가 되는 2020년에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액이 일본과 같게 되는데 이런 상황의 도래는 물경 400년 만의 일이다.

김 위원은 글에서 “고지가 바로 저기이니 우리 경제의 판을 키우기 위해 기업인들이 더욱 강한 의지와 마인드로 무장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필자는 여기에 규제개혁을 더한다. 규제는 국민을 키울 수도 옥죌 수도 있는 일종의 환경이다.

선우정 씨는 저서 ‘일본·일본인·일본의 힘’에서 “노력하면 되는 사람과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인은 전자다. 만약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었다면 그것은 한국인의 유전자 탓이 아니라 우성인자를 억누르고 있는 열성 환경 탓이다.”라고 했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 청소년 키의 변화’ 사례를 들었다. 요지는 이렇다.

1970년에 일본 청소년의 키는 167.8㎝로 한국 청소년 보다 1.9㎝ 더 컸다. 이런 키 차이는 1980년 2.3㎝까지 계속됐다. 역사적으로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컸지만 근대화가 먼저 진행되고, 전후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어느 순간 일본인이 한국인 보다 커졌다. 일본인이 한국인의 키를 역전시킨 때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 즈음이거나 한국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1950~60년 경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청소년의 키 차이가 정점을 이룬 1980년 이후 격차가 축소되기 시작하더니 1993년에 0.2㎝를 차이로 한국 청소년들의 키가 일본을 역전시켰다. 작게는 50년 길게는 100년 동안 역전됐던 상황을 단 13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이후 더 벌어져 2005년 현재 2.8㎝ 만큼 한국 청소년 키가 더 크다. 저자는 한국 청소년 키가 커진 요인을 ‘풍요’로 봤다.

일본 청소년이 키 차이를 벌린 1970년대는 일본이 수입자유화를 한 시기였다. 한국의 1980~90년대 역시 청소년에게 대량으로 동물성 단백질이 공급됐다.

육고기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맥도날드 1호점이 1971년에 긴자에, 1988년에 압구정동에 각각 들어섰다. 환경이 한국인의 성장 유전자를 자극하자 한국 청소년의 키가 단숨에 일본을 역전한 것이다.

저자는 “물론 신장이 크다고 나라가 부자가 되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화려한 문명을 갖는 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풍요’라는 환경에서 한국 청소년들의 성장 유전자가 잠에서 깼듯이 최적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한국인의 다른 유전자도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고 적었다.

우리는 이런 예를 스포츠에서도 쉽게 본다. 히딩크가 이끌었던 한국 축구와 늘 세계 1등 반열에 있는 한국 양궁의 성공은 공정한 선수 선발이라는 우성환경의 결과다. 이 연장선 상에 규제개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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