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대중의 변화를 기민하게 포착해온 예능가는 2015년 한 해에도 수많은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프로그램 한 편이 인기를 끌면 너나없이 덤벼들어 단물을 뺐다. 관찰예능과 세분화된 토크쇼가 여전히 한 자리를 차지했고, 장수예능들이 굳건히 시청자의 지지를 얻었다. ‘무한도전’은 올 한 해에도 굵직한 아이템을 통해 ‘국민예능’ 자리를 사수했다. ‘1박2일’ 역시 한 우물을 파며 탄탄한 고정시청층의 지지를 받았다. ‘삼시세끼’와 ‘꽃보다’ 시리즈는 올해에도 지상파를 위협하는 인기를 모았다.

트렌드를 만든 것은 새로운 상품들이었다. ‘쿡방’(요리하는 방송)의 열기가 식을 줄을 몰랐고, ‘음악예능’은 어느 해보다 전성기를 맞았다. 변주를 시도한 음악예능이다. 인터넷 1인방송이 마침내 TV를 침범했다. 전에 없던 착한 예능도 등장했다.

▶ 변화에 민감했다…‘냉부해’, ‘마리텔’=2015년 예능가 대표 트렌드는 ‘쿡방’과 ‘1인방송’으로 요약된다. 성공적으로 안착해 지금도 건재한 두 편의 프로그램이 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와 MBC ‘마이 리틀 텔리비전’이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요리채널을 위협한 명실상부 ‘쿡방’ 전성시대의 일등공신이었다.

숱한 요리 프로그램이 있었으나, 이른바 ‘요리예능’은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버라이어티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다. 스타들이 들고 나온 냉장고를 앞에 두고 ‘토크’를 나눴고, 셰프들은 냉장고 속 재료들로 15분간의 요리대결을 벌였다. 수많은 셰프가 스타가 됐다. 셰프가 스타가 되자 논란도 적지 않았으나, 올 한 해 가장 뜨거웠던 예능 트렌드인 ‘쿡방’ 전성기를 불러온 주역이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등장은 지상파 방송사의 ‘회심의 일격’이었다.

인터넷과 TV를 연계, 출연자들이 각자의 콘텐츠(요리, 운동, 마술 등)를 ‘무기’로 인터넷 1인방송을 진행한다. 일방통행에 익숙했던 TV가 플랫폼을 넘나들어 시청자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혁신적인 콘텐츠다. ‘일방적인 전달’만 해오던 지상파 스스로가 자신들의 권력을 내려놓은 프로그램이다. 인터넷 방송이 포맷의 출발점이기에 ‘마리텔’은 접속하는 시청자가 없다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방송이다. 인터넷 생방송 접속자는 나날이 증가한다. 채팅창에 접속한 시청자들은 출연자에게 끊임없이 토를 달고, 피드백을 요구한다. 백종원은 ‘마리텔’을 통해 ‘인기스타’로 등극, 2015년 예능가에서 발굴한 최고의 스타가 됐다.

▶ ‘슈퍼맨’ 잡은 ‘복면가왕’=MBC ‘일밤’은 ‘아빠 어디가’의 부진 이후 줄줄이 일요예능 1부 코너에서 경쟁조차 하지 못했다. 설 특집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뒤 안착한 ‘복면가왕’은 첫회부터 터졌다. 같은 시간대를 어떤 프로그램에도 내주지 않았던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잡고 왕좌에도 오른 올 한 해 ‘빅 히트’작이다.

기상천외한 복면을 쓰고 나온 출연자들이 기막힌 가창력을 선보였고, 시청자들은 방송 내내 복면 뒤에 가려진 주인공을 찾기에 분주했다. 얼굴 하나 가렸을 뿐인데, 프로그램은 한 사람의 스타가 안고 있던 모든 편견을 벗겨냈다. 수많은 아이돌 가수들이 재발견됐고, 숨은 보석들이 발굴된 시간이었다. 잊혀진 스타들이 다시 무대에 올라 감격스러운 시간을 맞았고, 가수 못지 않은 노래실력을 갖춘 연예인들이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창법과 성별까지 바꿔 정체를 숨기려는 스타들과 스타의 정체를 추리하는 시청자들의 참여가 어우러져 인기를 견인했다.

▶ 네가 제일 착해 ‘청춘FC‘=KBS2 ‘청춘FC’는 출발부터 건전하다. 제작진은 이 프로그램을 “삼포세대가 화두가 되고, 초등학교 때 대학이 결정되는 사회, 두 번째 기회가 없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최재형 PD)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각자의 사정으로 축구를 포기할 위기에 놓인 유망주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 프로그램이다. 안정환 이을용이 공동감독을 맡아 4개월을 달렸다.

기회 불평등 사회를 찾아온 ‘패자부활전’이 ‘축구’라는 스포츠와 만나자 축구팬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애초 12부작 기획이었으나 시청률과는 별개로 팬들의 뜨거운 반응에 16부로 연장했다. 한국에선 성남FC, FC서울 등 내로라하는 각 구단과 경기를 진행했고, 그 때마다 구장엔 청춘FC 팬들이 넘쳐났다. 인터넷에선 실시간검색어로 화제성을 입증했다. 프로그램을 향한 관심은 몇 번이고 좌절을 겪었던 선수들의 모습이 모두의 삶과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절박한 대장정은 “축구선수가 아니라도 살아가며 누구나 겪는 일, 내 동생일 수도 있고 아들일 수도 있기에 받게 되는 공감”(최재형 PD)의 힘이 컸다. 예능 프로그램답지 않은 담백한 연출과 꿈을 향해가는 선수들을 향한 진지한 접근이 돋보인 2015년 최고의 ‘착한 예능’이다.

▶ 드라마 뺨 치는 막장 ‘쇼미더머니’=문제를 만들고 이슈로 연결시키는 데에는 ‘쇼미더머니’(Mnet)가 단연 최고다. 이번 시즌에서도 ‘쇼미더머니’는 갖은 논란을 만들었다.

아이돌그룹 위너 송민호의 여성혐오 랩가사(“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 블랙넛의 바지 내리는 퍼포먼스와 과거 랩가사(강간ㆍ살인 언급, 윤미래 성(性)적 디스), 난장판으로 만든 사이퍼 미션(10분 안에 랩을 못 하면 탈락), 프로듀서 박재범의 ‘악마의 편집’ 불만이 이어졌다. 전파를 타진 않았으나 블랙넛의 성행위 퍼포먼스가 방송 전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급기야 심사위원들의 심사 번복 논란으로 공정성마저 훼손됐다. 힙합씬에서는 “디스도 문화”라고 설파하고,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수위를 넘는 가사를 쓰는 등 장르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즌4를 두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그동안의 논란의 종합편이라고 꼬집었다. 온갖 욕설이 난무하고, 출연자가 기행을 일삼고, 부적절한 랩가사를 쓰는 것에 대해 “녹화방송임에도 불구하고 편집을 고려하지 않는다”, “수차례 징계를 받았음에도 개선은 커녕 제작진은 도리어 부추기고 방관한다”고 지적하며 엠넷에 과징금 2000만원을 부과했다.

다 섞었다가 망했다 ‘일밤-애니멀즈’=올 1월, 안방엔 반짝 ‘동물’ 붐이 일었다. ‘삼시세끼’를 통해 밍키가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당시였다.

전통적인 동물 프로그램 ‘동물농장’보다 더 많은 동물이 등장하는 신상예능 MBC ‘애니멀즈’는 지난 1월 25일 첫 방송됐다. 시작은 거창했으나 시청률은 내내 변변치 않다. 4.7%로 시작한 프로그램은 2%대까지 추락하다 폐지됐다. 흥행불패 콘텐츠인 아이와 동물의 조화를 꾀했으나, 중구난방 뒤섞인 인기 아이템은 제 색깔을 내지 못 한채 초라한 마지막을 맞았다.

프로그램 제작발표회 당시 제작진은 “아이와 강아지가 함께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노는 환경”(김현철 PD)을 만들고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제영제 PD) ‘교감’을 앞세웠지만, 인간과 동물의 교감 이전에 시청자와의 교감에 실패했다. 동물과 사람의 숫자가 넘쳐나 특정 대상(동물)에 집중이 되지 않다 보니 주목도가 떨어졌던 점은 프로그램의 큰 단점이었다. 인기 아이템을 모으고도 성공하지 못한 워스트 예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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