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 서울 모 아파트 입주자들은 지하주차장에 계속 물이 고이자 뿔이 났다. 외벽에 생긴 균열도 문제가 됐다. 입주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은 가운데 발생한 문제로 입주자들은 민사소송을 준비했다. 재판에서 A 감정인은 감정료로 17억원을 불렀다. B 감정인은 5억2000만원을 요구했다. 입주자들은 싼값에 B 씨에게 맡기자는 쪽과, 비싸더라도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문제들을 찾아내겠다고 장담하는 A 씨에게 맡기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현재 건설 관련 민사소송은 ‘감정 재판’이라고도 불린다. 건설 소송 실무에서 법원이 지정한 전문 감정인의 감정절차가 주된 증거조사 방법으로 사용된다. 감정을 신청한 사람은 감정인들이 낸 예상 감정료를 보고 감정인을 선정한다. 법원에 감정료를 미리 내고 재판을 진행한다.
그러나 감정인에 따라 감정료가 천차만별이다. 들쭉날쭉한 감정료에 당사자들은 재판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감정인 입장에서도 일부 ‘불량 감정인’이 덤핑으로 가격을 후려치고 부실하게 감정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건설감정료 표준안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부터 일반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감정료를 산정하는 기준이 마련되고 투명하게 공개되는 만큼 법조계 관계자들은 부실 감정을 둘러싼 잡음은 물론 감정 비리 역시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건설소송실무연구회(회장 우라옥 부장판사)는 소속 법관 등 건설소송 관련 전문가들로 연구팀을 만들어 적정한 감정료 산정 방안을 개발했다.
세대수, 평형, 하자항목 개수 및 난이도 등을 입력해 감정료를 산정하게 했다. 엑셀 프로그램 형태인 이번 표준안은 ▷집합건물(아파트) 하자감정 ▷일반건축물 하자감정 ▷추가공사대금감정 ▷건축피해감정 ▷기성고(현재까지 시공된 부분만큼의 소요자금) 감정 5가지다.
개발에 참여한 송미경 판사는 “표준안을 통해 감정료를 산정하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는 감정료를 방지하면서도 이와 반대로 덤핑감정에 의한 부실 감정도 차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추가로 발생하는 감정료 청구의 합리적 근거도 확보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감정료 표준안 마련으로 건설 감정을 둘러싼 비리 역시 줄어들 것으로 법원은 기대하고 있다. 실제 지난 10월 검찰은 배임수재 혐의로 전문감정인 C 씨를 구속기소했다. C 씨는 모텔 신축 공사 중이던 건축주와 건축업자 사이에서 공사대금을 놓고 민사 소송이 벌어지자 건축주와 건축업자 양쪽에 접근해 각자에게 유리한 감정을 해주겠다며 양쪽 모두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예상 감정료가 공개되면 감정인들이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며 “감정료가 정해지는 과정이 모두 투명하게 공개가 되면서 부실 감정, 감정 비리 등 잡음이 덜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jin1@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