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 취업준비생 김가영(27ㆍ가명) 씨는 벌써 두 달 넘게 대학생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체 카카오톡 방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친구들에겐 취업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자존심과 자괴감 때문이었다. 김 씨는 “다같이 구직자 신세일 땐 서로 위로와 용기를 줘 힘이 됐지만, 다들 취업을 하고 나밖에 남지 않게 되자 단톡창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고문이 됐다”면서, “단체 카카오톡 방을 나가버리면 완전히 잊힐까 두려워, 차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김 씨는 “남들보다 고작 몇 년 뒤쳐지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지만, 주변에 날 이해하고 위로해줄 사람마저 없다고 생각하니 정말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다”며, “최근에는 공황장애까지 생겼다”고 덧붙였다.
‘취업’이 대인관계를 갈라놓는 새로운 ‘벽’이 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난에 취업의 벽을 넘지 못한 취준생들이 자책감과 스트레스, 박탈감 등에 시달리며 자신만의 ‘굴’ 속으로 들어가거나, 이미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단절하는 것.
반대로 1~2년 먼저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들 가운데서도 취업준비생 지인들에 부담 등을 느껴 연락을 끊는 경우도 적잖다. 취업이 친구사이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골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강모(29) 씨도 김 씨와 상황은 마찬가지다. 강 씨는 벌써 몇 번이나 시험에서 낙방하며 최근엔 휴대전화마저 스마트폰에서 3G 폴더 폰으로 바꿨다. 강 씨는 “누구는 대기업에 다니고, 누구는 전문직이라 그러고, 나 혼자만 뒤쳐지는 것 같아 스스로가 한심하다”며, “올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친구들도 다 끊은 채 시험에 집중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급기야 스트레스, 자괴감 등을 이기지 못한 일부 취업준비생들이 같은 처지의 미생(未生)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 소셜커머스 쇼핑몰 ‘쿠팡’ 취업 자랑글을 접한 평범한 전문대 졸업생이 질투에 사로잡혀, 자신을 ‘현직 쿠팡맨’이라고 밝히며 혼자 사는 여성들을 골라 연쇄살인하겠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다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것이다.
반대로 구직자인 지인의 눈치가 보여 거리를 두는 직장인들도 있다. 직장인 유모(27ㆍ여) 씨는 “무리에서 아직 취업이 안 된 친구가 한두 명 정도로 줄어들게 되자 다들 그 친구들 눈치만 보는 분위기”라며, “나조차도 괜히 직장 얘기 잘못했다가 자랑처럼 비춰질까봐 최근엔 직장인 친구들만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 자신을 둘러싼 자극들을 끊는 게 당시에는 스트레스도 덜 받고 편할 수 있겠지만, 사람은 사회적 지원이 없을 때 더 큰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라며, “불필요한 관계는 끊는 게 좋겠지만, 적절한 선별을 통해 나에게 힘을 줄 수 있고 심리적 지원을 줄 수 있는 관계는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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