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찬수 기자] #인천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거둬들이는 A씨(63ㆍ남) 씨는 내일부터 더 일찍 일어나기 위해 하루의 마무리를 서둘렀다. 내년부터 빈 병 보증금이 오른다는 소식에 재활용 쓰레기 수거 전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탓이다. 그는 “종이나 고철 등 돈이 되는 것들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새벽마다 전쟁을 치르는데, 앞으론 더 치열해질 것 같다”면서 “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마감하곤 했는데 이제 그 즐거움도 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B씨(52ㆍ여)는 쌓이는 빈 병들을 보며 걱정 반 기대 반이다. 현재 가져오는 빈 병들이 두 배 이상 뛰어오르는 보증금에 도움이 안 되는데다, 내년엔 과거 꼬마들이 병을 주워오던 풍경이 재현될 것 같아서다. B씨는 “매출에 조금은 도움은 되겠지만, 주변만 더러워지고 빈 병을 모아둘 공간이 없다는 것이 걱정”이라며 “가게 공간을 마련해놔야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내년 1월 21일부터 빈 병 보증금이 현재의 두 배 이상 오른다. 서민들의 애환의 상징인 소주와 맥주 가격도 인상이 불가피해졌다. 환경부는 빈 병 보증금을 소주병(360㎖)은 현행 40원에서 100원으로, 맥주병(500㎖ㆍ640㎖)은 50원에서 130원으로 각각 2.5배, 2.6배씩 올려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22년 만에 빈 병 보증금이 인상된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빈 병을 거둬가는 소수에겐 이득이 되겠지만, 실생활에서 애환을 달래주던 술값만 올라 주머니 부담이 커질 것 같다는 우려에서다.
실제 이날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푸념을 늘어놓는 네티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들은 관련 뉴스 링크를 게시물에 첨부하고 댓글을 통해 고민을 공유하고 인상안을 비판했다.
한 커뮤니티 사용자는 담뱃값 인상을 예로 들며 “흡연자들 주머니 털어 생색내면서 금연 관련 정책들은 더 축소했다”면서 “빈 병 보증금도 결국 실효성 없는 서민 주머니 털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른 네티즌은 SNS 계정을 통해 “해외에 가면 빈 병 주우러 다녀야겠다”고 농을 던지며 “이제 술 사달라고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일부 마트에서 벌써 사재기 조짐이 보인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내년 1월 이후에 출고된, 즉 새로운 라벨이 부착된 빈 병만 보증금을 적용한다는 점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것. 다른 트위터 사용자들은 “정부가 기대치만 올려놓고 벌써 꼼수를 부린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정확한 고지 없이 ‘빈 병’이라는 작은 혜택에만 관심이 머물도록 유도한다는 비판이다.
업주들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물가가 비싸지 않던 시절엔 ‘공병’이 효자였지만 내년에 시행한다 해도 매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업주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빈 병은 앞으로도 쓰레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며 “빈 병 보증금이 크게 오르더라도 애물단지 신세는 여전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한편 주류업계도 이날 빈 병 보증금 인상안 철회를 요구하며 빈 병 회수율 제고에 반기를 들었다. 한국주류산업협회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책의 실효성도 기대하기 어렵고 서민에게 큰 부담과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민들의 주머니 부담이 내년엔 현실이 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확인시켜준 대목이다.
주류업계는 소주와 맥주 가격이 현재보다 10% 가량 인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취급 수수료란 주류업체가 도매ㆍ소매상에게 빈 병을 대신 수거해주는 대가로 지급하는 돈으로, 소주병은 현재 16원에서 33원으로, 맥주병은 19원에서 33원으로 오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취급수수료 인상으로 제조사 부담액이 연간 125억원 늘어나는 만큼, 주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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