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들 몰리는데 창구는 고작 1~2곳만 운영 소비자에 실익없는 특화점포도 도마에
직장인 박모(42)씨는 최근 점심시간에 서울 마포구 합정동 직장 근처의 은행을 찾았다 분통을 떠뜨렸다. 점심도 거른 채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받아든 대기표를 보니 26명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라 응대창구는 단 2곳 뿐. 박씨는 50분을 기다렸지만 결국 일처리를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박씨는 “영업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점심 때 몰리는 고객들이나 신속하게 처리나 해줬으면 좋겠다”며 화를 삭히지 못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은행 4시 마감’ 발언 이후 은행들이 영업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특화점포 확대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들은 실효성이 없는 특화점포 확대보다 점심시간 처리 공백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점심때 가면 대기인원 20명, 창구직원은 2명…“속이 터진다 터져”=19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은행들은 점심시간 때 1~2곳의 창구만 열어둔 채 나머지 직원들은 점심식사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이 시간은 직장인은 물론 가게 문을 열기 전 은행을 찾은 자영업자나 주부 등이 한데 모이면서 고객혼잡도가 하루 중 가장 높은 때다. 특히 25일 등 은행 업무가 몰리는 날엔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로 인해 항의하는 고객들과 바쁜 직원들 사이에 얼굴이 붉히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고객서비스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 회사원 강모(35)씨는 “40분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됐는데 최근에 나온 금융상품에 대한 설명도 듣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사람들 눈길이 워낙 따가워 묻지 못했다”며 “야근하느라 오후 6시까지 문 열어도 어차피 못 올 거 그냥 점심시간에 왔을 때 신속하게 일을 처리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시청 근처 지점에 근무하는 한 은행 직원은 “오래 기다렸다고 막말을 하는 고객들로 상처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급하게 일처리를 하게 돼 실수를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털어놨다.
▶금고맡은 기관내 출장소, 환전소 영업시간 연장이 특화점포 확대?=금융권 내에서도 특화점포 확대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 은행의 특화점포가 생겨난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은행의 특화점포는 20여년전부터 있었다. 지난 1997년 당시 제일은행(현 SC은행)이 고객편의제고를 위해 동대문ㆍ남대문 시장 등 대형도매시장과 경주, 제주 등 관광특구지역의 영업점 시간을 오전 7시 30분에서 오후 6시까지 확대하며 은행권 영업시간 파괴 바람에 불을 당겼다. 이후 주택은행(현 KB국민은행), 외환은행, 부산은행 등이 잇따라 영업시간 연장 및 연중무휴 영업을 시작, 은행권 전반으로 확대됐다. IBK기업은행은 2009년 맞벌이 부부를 겨냥해 대형마트에 입점한 점포를 선보였다. 연중무휴로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했다.
하지만 특화점포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부분의 특화점포들은 기존 영업시간으로 복귀하거나 사라졌다. 한 은행 관계자는 “막상 열고 보니 고객 호응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고 은행 수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묻지마식 특화점포 확대’는 출혈경쟁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비용부담은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갈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특화점포가 특정지역, 특정 기관 입점 점포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특화점포 확대 효과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수십개씩 특화점포를 운영하고 있지만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 대부분이 공항, 기차역 등 특정지역이나 금고를 맡은 관공서나 기업 내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서비스도 환전과 송금 등 일부업무에 그친다.
▶다양한 임금ㆍ고용형태 나와야=은행들은 점심시간 영업 효율성 증대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워킹맘 등 탄력근무를 원하는 직원도 상당하다는 전언이다. 한국씨티은행 등 상당수 은행들이 탄력근무제를 도입한 만큼 적용대상을 지점 직원으로 확대하면 어렵지 않은 문제란 얘기다.
하지만 당장 도입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은행관계자는 “어음처리 등 기업금융 담당 직원은 제외하고 일반 창구하는 직원들을 오전 9시 출근조, 오전 11시 출근조 등으로 나눠 고객을 응대하면 점심시간 공백에 따른 고객불만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도입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인력 배치 등은 노조와의 합의사항인 곳이 많기 때문이다. A은행 관계자는 “탄력근무제가 본사 사무직을 대상으로는 이뤄지고 있지만 지점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노조와의 합의가 필요하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 “고객이 몰리는 시간에 직원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직원으론 한계가 있는 만큼 시간제 비정규직 직원을 늘려야 하지만 노조에서는 비정규직 확대를 원치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순히 특화점포를 확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궁극적으로 금융혁신을 위해서는 다양한 임금체계와 고용형태가 등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