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TV 드라마에서 역대 최연소 이방원이 살아났다. SBS 창사 25주년 특별기획 ‘육룡이 나르샤’다. 이 드라마는 실존인물(이성계 정도전 이방원) 세 명과 가상인물(이방지 무휼 분이) 세 명을 ‘여섯 용’으로 부르며, 망해가는 고려 위에 새 나라를 세우는 ‘혁명기’를 그린다.

이 여섯 명은 공평하게 자신의 출연분량을 가져가나 이방원은 드라마의 중심으로 상당히 깊숙하게 들어와있다. 그는 훗날의 태종이며, 지금의 이야기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던 이방원의 성장스토리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육룡이 나르샤’는 ‘국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고려 말, 나라는 지켜줄 생각을 하지 않는 백성들의 참상이 화면 내내 이어진다. 백성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비는 칼 맞아 쓰러지고 자식들은 세금에 찢겨 죽고 잿가루 날리는 만월대에 통곡소리 구슬퍼라.”

거악이 드리운 나라에서 수탈의 역사는 생존과 관계한다. 권력자는 가축은 돌보지만 백성은 짐승 취급한다. 새끼돼지의 끼니를 챙기려 아녀자의 젖을 물린다. 돼지만도 못하다 여겨지는 사람은 줄줄이 죽어나간다. “산다는 건 뭘 한다는” 건데, “아무 것도 할 게” 없다. 그럼 우리는 ‘망해가는 나라와 함께 죽어야 하는가’. 행동하는 민초는 드라마가 만든 허구의 인물 ‘육룡’ 중 하나가 돼 그들의 현재를 대변한다.

드라마는 새 나라 조선을 세우는 혁명에 다가서기 위해 거악이 된 고려의 참상을 더 비극적으로 끌어낸다. 고려 말을 살아가는 개인들의 분노가 모여 혁명의 원동력이 되는 과정이다. 정도전의 대사인 “홍인방, 너의 욕망이 혁명에 불을 당겼다”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방원이라는 인물은 그간 사극에서 비췄던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강조하듯 이 드라마는 2011년 화제의 사극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인 탓이 적지 않다. ‘육룡이 나르샤’는 조선 창업을 노래한 ‘용비어천가’ 1장에 나오는 구절을 따왔다. 세종의 6대 선조를 찬양하는 노래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바로 태종 이방원이었다.

유년시절, 소년시절을 거치며 이방원은 귀족이었음에도 백성의 아픔에 공감했고, 권력자의 더러운 욕망과 이기심에 분노했으며,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며 그 대업을 향해 달려갈 줄 아는 시대가 원하는 리더상의 하나로 그려진다. 지금껏 TV 사극이 그린 이방원 가운데 가장 매력적이고 순수한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방원에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왕자의 모습을 하나씩 던져놓고 있다.

이방원이 현재 원하는 것은 오로지 ‘혁명’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다. “너무 멋진” 그 혁명을 이루기 위해 이방원은 아버지를 속이는 것도 마다 않는다. 그것은 철부지 다섯째 아들의 귀여운 거짓말이 아니다. 한 나라가 스러지고 새 나라가 세워지는, 그로 인해 수많은 백성이 피눈물을 쏟아야 하는 일이다. 죽어가는 백성을 연민했지만, 대업을 이루기 위한 백성의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는 이방원은 ‘난세의 영웅’을 꿈꾸는 피 끓는 청춘일 뿐이었다.

지난 2, 3일 방송에선 아버지 이성계도 모르게 안변책이 적힌 장계에 인장을 찍고, 자신이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을 기미를 보이자 무력으로 제압하고, 술수를 부리는 것도 마다 않는다. 안변책을 통과시키기 위한 정도전의 계획이 틀어지려하자 이방원은 홍인방과 담판을 짓는다. 오로지 단 하나를 보고 달려가는 목적지향족 인물에게선 무서운 추진력이 나온다.

정도전은 이방원을 두고 “통제하기 어려운 폭두(어디로 취지 알 수 없는 사람)”라고 했다. 드라마는 정도전의 입을 통해 “난세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난세를 극복하는 사람, 난세와 싸우는 사람 그리고 난세를 타는 사람”이다. 그 가운데 이방원은 “난세를 타는 사람이고 싸우는 사람”이라며 새 나라를 세우려는 대업을 이루는 자리는 “네가 차지할 자리는 없으니 나가라”며 내쫓는다.

혈기 왕성한 청년은 물가를 서성이며 정도전의 말을 곱씹는다. 복잡다단한 감정이 교차되는 얼굴 위로 몇 번이고 웃음과 미소가 드리웠다 사라진다. 이방원은 또 한 번 문제적 대사를 뱉는다. “너무 멋져.” 이방원은 훗날 정몽주가 새 나라의 신하가 될 뜻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를 살해한다. 이방원의 목적과 욕망을 거스르는 자는 조선 건국의 대업 앞에서 줄줄이 죽어나갔다. 성공한 쿠데타의 주역인 그는 자신의 욕망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형제들을 살해했고, 아버지를 위협했다. 드라마에서 이방원은 “난세와 싸우는 사람”이 될 것을 결심하며 “너무도 멋진” 혁명을 그리며 껄껄 웃는다. 역사가 정의했던 이방원의 잔혹한 욕망이 대세 배우 유아인에게서 고스란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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