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정호 기자] 단말기 유통법의 힘은 강했다. 정부가 특정 사업자에 페널티를 주는 ‘영업정지’가 오히려 마케팅 비용 절감의 기회가 될 정도로, 시장 질서를 완전히 뒤바꿨다.
단통법 이후 처음으로 시작된 영업정지 기간, 50%의 시장 점유율을 가진 1위 사업자의 고객 이탈은 미비했다. 번호이동을 통해 1위 사업자의 가입자를 뺏어올 수 있는 후발 주자들이, 단통법에 발 묶여 적극적인 가격 정책을 펴지 못한 까닭이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영업정지 첫 날인 지난 1일 6066명의 가입자 순감을 기록했다. 반면 번호이동을 통해 SK텔레콤 및 타사 가입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KT는 3096명의 가입자를 늘렸고, LG유플러스는 2970명의 가입자를 늘리는데 그쳤다. 알뜰폰 포함 전체 번호이동 숫자도 1만369건에 머물렀다.
이는 단통법 이후 월 평균 번호이동 수치가 30만건 내외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영업정지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KT와 LG유플러스가 일부 단말에 대해 보조금을 단통법이 정한 범위 내 최고 수준까지 높혔지만,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에는 실패했다는 뜻이다. 심지어 단통법 예외인 출시 15개월이 지난 단말 일부는 공짜폰으로 만들었지만, 이 또한 SK텔레콤 가입자 빼앗기에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통사들의 가격 경쟁을 제한한 결과, 소비자들이 원하는 단말기의 경우, 구매 희망 가격과 판매 가능 가격 간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며 “1000만원이 넘는 현상금을 노린 폰파라치가 활개치는 가운데서도, 암시장 격인 불법 보조금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이런 모순에서 나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런 암시장에 접근 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KT나 LG유플러스가 불법 보조금으로 전용 가능한 판매 촉진금을 늘려도 그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통법 시행 이전, 가격 조건에 따라 최고 하루 30만개까지도 이뤄지던 번호이동, 즉 가입자 쟁탈전이 있었던 것과도 대조되는 모습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신형 단말기와, 가입자 유치가 필요한 이통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경우 발생하곤 했던 소위 ‘대란’ 기간, 번호이동은 일 평균 10만건을 웃돌았다. 일부 통신사들은 몰려드는 소비자들의 가입 신청서를 다 처리하지 못해, 수 일동안 나눠 처리할 정도였다.
반면 영업정지를 당한 SK텔레콤은 적극적인 ‘기변방어’ 정책을 폈다. 평소와 같은 공시 보조금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인기 모델을 동원한 이미지 마케팅으로 가입자를 묶어두는데 성공한 모습이다. 단통법 이후 기기변동 비중이 번호이동을 앞지르면서, 정부의 영업정지 조치가 처벌이 아닌, 마케팅 비용 절약의 기회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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