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지난 1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 하하는 지난 주 우토로 마을에 이어 논란 속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하시마 섬을 찾았다. 이날 방송된 ‘무한도전’은 가슴아픈 우리의 역사와 감동을 동시에 전했다.

이날 하하는 유재석과 함께 우토로 마을에 다녀온 뒤 하지마 섬에서 조선인들의 강제 징용이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하는 “제가 너무 아는 것이 없다”며 서경덕 교수를 초빙했고, 함께 하시마 섬으로 떠났다. 이들이 방문한 일본의 하시마 섬은 일제강점기 ‘감옥섬’, ‘지옥섬’으로 악명 높던 곳이다.

하시마섬으로 강제징용당했던 생존자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너무 배고프다, 쥐나서 죽겠다 라는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라며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전했다.

서경덕 교수는 일본이 발행한 하시마섬 홍보책자에서 강제 징용에 대한 단어는 없다고 전했다.

이에 하하는 “가슴이 답답하고 속상하다. 일본은 사람들한테 본인들이 한 것에 비해서 너무 아름다운 것만 기억에 남게 하려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하시마섬에 입도한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강제징용 등 역사적인 사실은 언급하지 않은 채 탄광도시로 호황을 누렸던 내용만 강조하는 현지 관광안내원의 설명에 더욱 속상해했다.

이후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나가사키 내륙 공동묘지를 찾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을 위한 공양탑을 찾았다.

이후 다시 찾은 공양탑에서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준비한 꽃을 헌화하며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일본 나가사키(長崎)현에 위치한 하시마섬은 1960년대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탄광촌이자 광업 도시로 인기를 누렸다. 섬의 모습이 마치 군함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군칸지마(軍艦島ㆍ군함섬)라고도 불린 하시마섬은 면적이 여의도(2.9㎢)의 약 50분의 1(0.063㎢)에 불과했지만 5000명이 넘게 살았을 정도였다. 학교, 병원, 영화관까지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각종 연료가 석탄에서 석유로 대체되면서 1974년 1월 하시마섬의 탄광도 폐광됐다. 같은 해 4월에는 남아있더 주민 2000여 명도 모두 섬을 떠나 하시마섬은 무인도가 됐다.

1938년 일제는 조선인을 하시마섬에 대향으로 강제 동원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많은 임금을 주겠다며 그들을 데려갔지만 곧 노동 착취가 일어다.

하시마섬으로 간 조선인들은 갱도에서 하루에 12시간씩 누운 자세로 해저 1000m에 이르는 갱도에서 평균 45도 이상의 고온은 견디며 석탄을 캤다. 조선인들은 갱도에 들이치는 바닷물에 피부가 썩어 들어갔으며 할당량을 못 채우면 갱도에서 나올 수 없었다고 알려졌다.

이들 조선인은 약속한 월급 중 10%에도 못 미치는 금액인 5엔밖에 받지 못했고, 이곳을 탈출하려는 이들은 살점이 떨어지는 형벌에 처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조선인 사망자는 8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들 조선인의 유족들은 2차대전 이후 일본에 강제 동원 사망자들의 유해 봉환과 피해보상을 요구했지만 무시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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