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거액 기부하는 중화권 부호 46명…중국 본토출신은 20명 불과 - 진정성 갖춘 ‘기부왕’은 단 5명…기부 퍼포먼스 조작 등 ‘쇼’ 비판 비등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윤현종ㆍ김현일 기자] 중국판 포브스로 불리는 후룬(胡潤)연구소가 지난달 19일 ‘중화권 부호 리스트’를 발표했습니다. 우리가 ‘중국(대륙)’으로 부르는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자와 대만ㆍ마카오ㆍ홍콩인, 그리고 해외 화교가 포함됐습니다.

자산 20억위안(3700억원)이상 보유자 기준 총 1577명이 집계됐습니다. 중국대륙 출신은 1254명, 그 외 지역에선 323명이 나왔습니다.

지난 8일 연구소는 이 데이터에 기반해 재미있는 자료를 냈습니다. 매년 거액을 기부한 부호입니다. 총 46명이 뽑혔습니다. 꾸준히 자선(慈善)에 힘썼단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화권이 아닌 대륙만의 결과는 어떨까요.

중국 본토엔 자산 10억달러 이상 빌리어네어가 세계 두번째(430명ㆍ2월 기준)로 많습니다. 억만장자가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곳입니다. 13억5000만명 이상 거대 시장이 부자들 자산증식을 돕고 있는 건 절대 무시 못할 요인입니다.

과연 진정성 돋보이는 대륙의 기부천사(?) 회장님들은 얼마나 될까요. 결론부터 살짝 말씀드립니다. 본토의 기부부자는 46명 가운데 절반도 안 됩니다. ‘쇼(Show)’가 의심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20 vs 26 = 후룬 측 데이터에 따르면, 출생지나 사업근거지가 중국 본토인 거액 기부 부자는 20명입니다. 26명은 홍콩ㆍ대만 등 중화권 출신과 동남아 등지에 분포한 화교부자들입니다. 자세히 볼까요.

매년 100억위안(3조6900억원)이상 기부해 리스트 최상단을 차지한 중화권 부호는 3명입니다. 이 가운데 대륙부자는 마윈(51)알리바바 회장 1명입니다. 나머지 2명은 홍콩의 리카싱(87) CKH 홀딩스 회장,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의 부인 프리실라 챈(30)입니다. 그러나 챈이 자기가 번 돈으로 기부한 것인지 확인된 건 없습니다. 이번에 집계된 기부 전액은 남편과 공동명의였습니다.

대륙부자 가운데 ‘기부왕’으로 선정된 마윈 알리바바 회장, 그러나 그의 기부액 상당부분은 해외로 흘러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출처=게티이미지]
대륙부자 가운데 ‘기부왕’으로 선정된 마윈 알리바바 회장, 그러나 그의 기부액 상당부분은 해외로 흘러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출처=게티이미지]

매년 30억위안(5500억원)∼100억위안 가량을 자선에 쓴 부자는 중화권에서 6명이 나왔습니다. 이 중 대륙부호는 4명입니다. 알리바바의 ‘2인자’로 불리는 차이총신(51) 부회장과 아시아 최대부호인 왕젠린(61) 완다그룹 회장 등입니다.

비(非)대륙 부호는 대만의 궈타이밍(65) 폭스콘 회장과 홍콩 부동산재벌 리쇼키(87) 핸더슨 부동산그룹 회장입니다.

한 단계 내려가 10억위안(1850억원)∼30억위안을 매 해 기부한 대륙부호는 7명입니다. 기타 중화권 부자는 9명이죠.

매년 5억위안(922억원)∼10억위안을 기록해 기부리스트 최하단을 장식한 중국 본토 부호는 8명, 화교 등 대륙출신이 아닌 부자는 13명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비율인데요. 중화권 부자 총1577명 중 대륙 출신이 1254명(79.5%)이었습니다만, 꾸준히 기부를 많이 하는 부자는 1.6% 뿐입니다.

반면 기타 중화권 부자는 323명으로 1577명의 20.4%에 그쳤지만 8%가 ‘기부천사’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국 민간단체 개인 기부, 4명 중 1명 = 그렇다면 대륙 기부부자 20명의 지난해 기부성적은 어땠을까요. 이를 위해 교차검증을 시도했습니다.

베이징사범대학중국공익연구원(이하 공익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4 중국(본토)인 기부왕(개인자격 기준) 상위 100명’과 후룬 측 리스트를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흥미로운데요. 우선 공익연구원 데이터와 후룬의 리스트에 모두 올라간 부자는 11명입니다. 절반을 겨우 넘겼습니다. 공익연구원의 리스트에 없지만 후룬 측 데이터에 올라간 나머지 9명은 개인기부액이 100위권 밖이거나 아예 회사명의로 기부한 부자란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11명 중에서도 중국공산당이 만든 기부단체나 준정부기관에 기부한 부자가 3명입니다. 일종의 어용(御用)기부인 셈입니다. 자국 땅이 아닌 해외에 기부한 부자는 2명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머지 6명 가운데 부동산 재벌 쑨인환(66) 이다그룹 회장은 2013년부터 카리브해 섬나라 앤티가바부다에 65억위안(1조1900억원) 규모 리조트사업을 추진 중인데요. 앤티가바부다는 유명한 조세 회피처입니다. 쑨 회장의 지난해 개인기부액은 1750만위안(32억원)으로 조사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작년 1년 간 별 구설수 없이 자국 민간단체에 개인재산 거액을 기부한 중국 본토 부호는 사실상 5명입니다. 20명 중 5명이니, 25%수준이네요.

아울러 후룬 연구소가 “대(大) 자선가”라고 높이 평가한 중화권 부자 46명 가운데 최소한의 진정성을 훼손받지 않을 만한 본토부자도 10%수준에 불과한 셈입니다.

중국 부자의 기부, 무엇이 문제일까 = 대륙부자의 기부활동에 일종의 ‘감춰진’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일단 조국에 돈을 내놓지 않습니다. 공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재산을 나누어 기부에 쓴 상위 100명의 기부액은 총 304억위안(5조3400억원)입니다. 하지만 이 기운데 242억위안(약 4조2500억원)은 중국 밖으로 흘러갔습니다. 해외에 적을 둔 자선기구나 홍콩ㆍ마카오 등 소위 ‘특별행정구’로 불리는 지역 자선단체로 보내졌습니다. 개인 자선가 100명의 기부액 80%는 중국 본토를 외면한 셈입니다. 기부금액의 ‘엑소더스’ 추세는 해가 갈수록 두드러진다고 연구원은 덧붙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요. 기부를 하면 소득세와 부가세를 물어야 하는 중국 국내 시스템 때문입니다.

연구원의 장가오롱(章高榮)주임은 “개인부호가 연수입 30%이상을 중국 본토에 기부하면 반드시 소득세를 내야한다. 기업 기부규모도 이윤총액 12%를 넘기면 세금이 붙는다”고 말합니다.

기부 환경도 걸림돌입니다. 투명성이 떨어지는 게 핵심입니다. 자선단체들이 자금 사용내역 등을 잘 공개하지 않는 것이죠.

중국 내 대형 자선조직의 연합체 격인 중민(中民)자선기부정보센터에 따르면 작년 중국의 자선투명지수는 100점 만점에 44.1점이었습니다. 자선단체의 56%가량은 운영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표본조사를 진행한 자선단체 1000군데 중 투명도 ‘우수’판정을 받은 곳 비율도 13.6%에 머물렀습니다. 반면 투명도 60 이하를 받은 저등급 자선단체는 2013년 73곳에서 133곳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일반 시민들도 크게 만족하지 못합니다. 자선단체에 대한 중국 국민의 만족도는 지난해 기준 28%에 불과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륙부자 가운데엔 기부를 ‘쇼’로 인식하는 이들도 상당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천광뱌오(47) 장쑤황푸재생자원이용유한공사 회장입니다. 그는 매년 10억∼30억위안을 기부하는 부자로 집계돼 있지만 그 진정성에 의구심이 드는 인물인데요.

그는 최근 기부 퍼포먼스를 조작한 사실이 들통나 곤욕을 치뤘습니다. 작년 8월 천 회장도 당시 유행했던 ‘아이스버킷챌린지’에 동참했었는데요. 그때 사용한 물이 얼음물이 아닌 온수였다는 게 드러난 것입니다. 천 회장 자신도 이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지난 3월 한 현지매체 인터뷰에서 “(퍼포먼스 직전) 통속에 50도 정도의 물을 먼저 넣었다”며 “수온이 높아 다리가 빨개질 정도였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과장된 행위예술이었다”고 변명했습니다.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중국 국영중앙방송(CCTV)까지 관련 논평을 내고 “그는 대체 무슨 도전을 한 것이냐”며 “이건 대중을 기만에 빠뜨린 사기”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일각에선 법적 처벌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대륙에서 진정성과 자격을 모두 갖춘 기부천사가 쏟아져 나오는 것. 아직은 요원해 보입니다.


윤현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