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자소서 첨삭 받고 왔는데 다 갈아 엎으라네요. 공부만 열심히 해왔는데 무슨 극복 경험을 자꾸 쓰라는지. 이놈의 자소설….”
취업준비생의 한탄이 아니다. 대입 수시 모집 지원을 앞둔 고교생의 말이다.
‘자소설’ 한탄은 취업난에 허우적대는 청년들만의 전유물이 더는 아니다. 대학입시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자소설’의 성토하는 고3 수험생들이 부지기수다.
| 사진=게티이미지 |
이에 자소서 평가의 취지는 좋지만 공교육이 한계가 있는 현실에서 수험생들이 학원이나 컨설팅 업체 등 사교육 시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2016 수시 모집 요강’에 따르면 올해 입시에서 내신 성적이 절대적인 학생부교과전형의 모집 비중이 줄고, 자소서 등이 포함된 학생부종합평가(옛 입학사정관제) 비중은 크게 늘었다. 대학 입시에서도 ‘자소서’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자소서는 대학을 다닌 20대 중후반 취업준비생들조차 힘겨워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취업준비생 66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소서에 거짓을 쓴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551명(82.9%)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10명 중 8명이 ‘자소설’을 쓴 것이다. ‘자소서를 다른 사람이 대신 써준 적 있냐’는 질문에는 20.9%(115명)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5명 중 1명은 ‘대필’ 경험이 있단 것이다.
취준생 자소서와 요구 사항이 다르다 해도 고3 수험생들이 받는 압박감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불안해하는 학부모와 수험생을 위해 교육청이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23일 ‘자기소개서 작성 설명회’를 연다. 하지만 이는 학생들의 자소서를 지도하기에 일선 학교 교사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결국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사설 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수십만원짜리 자소서 ‘대필’ 컨설팅에도 강남 엄마들이 줄을 선다는 뉴스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자소서에 시달리는 나이는 점점 어려지고 있다.
외고나 과고 등 특수목적고나 자율형 사립고에 입학하려는 중학생, 국제중학교에 입학하려는 초등학생도 자소서를 써야하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자소서 평가의 취지와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극심한 경쟁 속에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스스로 진로를 고민해볼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사실 고교생 혼자 자소서를 쓰기엔 벅찬 게 현실”이라면서 “따라서 교사들의 지도가 절실한데 공교육의 역량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상당수 고3 담임들이 학생들에게 자소서 작성을 가르칠 시간과 경험이 부족하다”며 “특히 공립고의 경우 신임 교사나 기간제 교사가 고3 담임을 맡기도 하는데, 학부모들 기대감은 더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튀지 말고 학과 공부에만 충실하라고 가르침 받아온 환경에서 자란 대부분의 청년 취업준비생이나 고3 수험생 대부분 ‘자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서 “취업, 대입 모두 경쟁이 너무 심하다보니 여유있는 사람들은 학원이나 전문 컨설팅, 심지어 대필을 이용하는 등의 역기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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