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 김시태 선생님과의 재회에서 느낀 감상
-은천 김시태 선생님과의 재회에서 느낀 감상
[헤럴드경제=김영상 소비자경제부장]지난 15일 광복 70주년의 날.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내 독립관에서는 순국선열추모문화전이 열렸다. 행사는 조촐한 전시회로 진행됐다. 사진과 시 및 추모글, 서예, 한국화, 민화 및 도예 작품이 독립관 앞마당에 전시됐다.
행사는 ‘광복 70주년 순국선열추모문화전 추진 네트워크’가 주최했다. 정부나 기관이 나선 것이 아니다. 이들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이었다. 송기엽 이민재 김진중 최명규 황만선 고명주 등 ‘순국선열 추모문화전추진 상임위원’이 주축이 됐다. 모두들 이름없는 시민들이다.
상임위원들은 공동명의를 통해 “광복 70주년이 되는 뜻깊은 2015년, 뜻깊은 인연으로 만난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시민이 재능기부를 통해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한마당을 독립과 광복의 성지에서 준비하게 됐다”며 “순국선열추모전은 국내외에서 전문가부터 일반시민까지 함께 모여 전시를 하는 특별한 행사이며, 광복 70년 미래 30년의 뜻깊은 의미를 담고자 총 100점을 준비했다”고 했다. 이어 “사진작품, 어록, 민화, 추모시 및 추모글 등 작품 하나하나마다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에 바치는 들꽃 한송이 한송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독립공원에는 많은 행사가 치러졌다. 세상에 많이 알려진 단체들의 주관 행사도 많이 열렸다.
기자는 상임위원 중 한 사람과 인연이 있어 행사에 참석했다. 기자의 은사이신 고(故) 오암 김낙봉 선생님의 작품도 이날 행사장에 전시됐다. 은사와의 정(情)을 못잊어 추모전을 찾은 것이다. 행사 내내 오암 선생님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어느 순간, 행사장 뒤쪽에 있는 80대 연령의 노신사를 발견하고는 눈을 떼지 못했다. 혹시? 낯이 익었다. 아, 그 옛날 선생님. 혹, 김시태 선생님이 아닐까.
가까이 다가갔다.
“혹시 김시태 선생님 아니세요?”
“네. 그런데요”
“아, 선생님. 저 옛날 제자입니다. 30년만에 뵙네요. 왜, 제가 고등학교때 선생님 댁에도 찾아뵙고 그랬잖아요?”
선생님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신가 보다. 한참후 “아, 그러고보니 생각이 나네. 확연하지는 않지만…”
선생님 역시 옛날 직장동료였고, 마음의 지기(知己)였던 오암과의 추억으로 이 자리에 오셨단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처음의 낯설음은 몇분만에 해제됐고, 사제간의 정은 담소로 이어졌다. 선생님은 영종도에 사시고, 가끔 세상구경을 하러 시내에 나오신단다. 뭐 하냐고 물으시고, 기자생활하고 있다고 하니 이런 저런 당부의 말씀도 하신다.
“내 나이 80이 넘었어. 뭘 또 바라겠어. 다만 산업화 세력도 좋고, 민주화 세력도 좋지만, 서로 이전투구하면서 공통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게 내 한(恨)이야. 왜 아직도 쌈박질 하는 지 이해가 안돼. 해방이 됐을때 난 아주 어렸는데….광복 70주년의 날, 아직도 서로 싸우고 대립하고 반목하고…이러면 안되지.”
그러고보니 선생님은 역사를 가르쳤다. 글 쓰는 것에도 관심이 많으셨다.
“기자라고 하니까 이런 말도 하게 되네. 나도 예전엔 글 많이 썼어. 5ㆍ16, 인혁당 사건 관련해서도 글을 써 필화(筆禍)에 연루되기도 했고. 남산에 아마 두번정도는 갔을 걸?”
그러면서 당신은 작은 가방 안에서 A4 용지 두어장을 건네준다. 광복70주년을 맞이해 한번 써본 글이란다.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세상에 내놓으려던 것은 아니고 그냥 세상 돌아가는 게 답답해 적어놨다는 게 당신의 말씀.
“이거 한번 신문에 내봐. 우리같이 나이든 사람이 이제 할일이 뭐 있겠어?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했으면 한다는 말도 할데도 없고, 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 노인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A4용지 2장을 받으니 제목이 ‘역사의 강물을 흐르게 하자’라는 내용이다.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사진 한장 보내달라고 하자 “우리가 메일을 어떻게 보내”라며 지갑에서 명함사진 한장을 건네주신다. 젊은 날 사진이다. 그 옛날 교단에서 뵈었던 선생님 모습. 아마, 늙으신 모습을 굳이 내세우지 않으려 젊었을때의 명함 사진을 주시는 것 같다.
스승과의 해후는 이렇게 끝이 났다. 모처럼 뵈었으니 콩국수라도 대접하겠다고 하자 처음엔 좋으시다고 하더니, 조금있다가 손자와 손녀가 오기로 했다며 사양하셨다.
아쉬움을 뒤로한채 돌아섰지만, 은사가 건네준 A4 용지 2장을 돌아오는 내내 손에 꽉 쥐었다. 30년만에 뵌 선생님이 이 시대에 주는 메시지를 보물다루듯 소중히 하면서….
다음은 은사께서 주신 A4 용지 2장의 글.
<역사의 강물을 흐르게 하자>-광복 70주년에- 은천 김시태
역사 속에는 국가의 영고성쇠가 도사리고 있다. 또한 인과응보의 원리과 결과가 따른다.
모든 사단은 진리가 순리로 진행되면 흥하지만, 거역하거나 나태하면 망한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고 창조하거나 발전하지 못하고 퇴보하거나 감한다. 흐르는 물은 통합의 창해를 향해 밑으로 내려간다. 밑은 지반이요, 백성이다. 공고하고 청결해야 역사의 강물은 잘 흐르고 백성은 행복하고 나라는 평화롭게 성장한다.
반만년 우리의 역사에서 이같은 명운의 순환을 수없이 경험하였고 반복되어 왔다.
다시는 역사의 비극과 고난을 되풀이하지 말자. 개선하자고 하면서도 독선과 교만, 이기와 비협력으로 고통과 위기를 수없이 당하며 흘러가고 있다. 광복의 영광도 자주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요, 갈등과 굴절속에 국토의 단절이란 절망속에서 이루어졌다. 분단된 영토지만 건국은 민족의 염원이요 시대적 사명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탄생과 기반 구축에는 사상의 분열과 갈등, 동족상쟁의 처절한 전쟁이 겪은 뒤에야 이루어졌다.
자원이 없고 반상대립의 유교적 사회의 병폐는 물자부족과 가난한 생활이 필연적이다. 여기에 타협과 균형의 민주주의 시발은 고질적 역사 인식으로 당파성, 배타성으로 국가존망이 어렵도록 혼란스러웠다. 개혁보다 더 강하게 혁명이 왔다.
잘 살아보자. 근면 자조 협동의 새나라 건설 정신은 규제와 강압, 독단의 실행은 있었지만 산업화가 이뤄지고 물질과 소득이 높아지는 ‘한강의 기적’이 성취됐다. 공업화와 도시 생활 수출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는 풍요로운 생활도 있었지만 많은 병폐도 수반되었다.
주체성의 상실, 도덕성 추락, 가정생활의 혼란, 저질 자본주의 갈등, 극단적 이기주의, 공동체의 파괴 등 불건전한 사회현상이 조장되기도 하였다. 성장만을 강요하면서 민주적이고 자주적이며 협동의 토대가 붕괴돼 버린 결과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정의와 진실의 강물은 어렵고 힘든 과정과 희생속에 민주화도 어느정도 성취되고 있다. 세계인들은 한국의 성장과 번영을 동경하고 모범사례로 삼는다. 우리는 자랑도 하고 자부심도 가졌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역사발전의 과정임에도 상호 불신하고 원망하며 인정하지 않고 이전투구한다. 또다시 강물은 혼탁하고 부족하여 멈추어져 썩고 있으니 광복 70년의 역사가 암담하고 두렵다.
늦으면 강바닥이 주저앉는다. 이에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다함께 역사의 청정한 강물을 만들고 흐르게 노력하자.
역사의 원형은 반복되는 힘이 있으니!
ysk@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