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그리스 작가다. 영국의 비평가 콜린 윌슨(Colin Henry Wilson, 1931-2013)은 카잔차키스를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견주었다. 그리고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었음을 통탄했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였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더라면, 그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들의 나라’, 그리스는 벌써부터 이렇게 서러운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리스 디스카운트(discount)’다. ‘인간의 나라’로 강등된 그리스. 아직 바닥은 끝나지 않았다. 디폴트(default, 채무불이행) 선언에 이어 6일 국민투표를 통해 채권단 긴축안을 거부했다.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가는 문이 열렸다. 문을 넘어가면 ‘하나의 유럽’ 꿈을 깨뜨린 천덕꾸러기가 된다.

그리스의 빚은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헤프게 써서 그렇다는 의견(이른바 ‘복지병’)과 잘 거둬들이지 못해서 그렇다는 견해(탈세 등 ‘부정부패’)가 갈린다.

자유를 꿈꿨던 카잔차키스의 저 유명한 묘비명은 이렇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들은 카잔차키스와 거리가 멀었다. 너무 많은 것에 욕심을 냈다. 연금을 갈구했고, 부정수입을 갈망했다. 이제 두려움만 남았다. 그리스인들은 속박됐다.

그렉시트는 말만 탈출이지, 자유가 아니다. 메르스(MERS) 때문에 일상화된 말 ‘자가격리’가 더 맞다. 그리스는 완치될 수 있을까. 조르바가 즐기던 포도주 한잔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까.

김필수 라이프스타일섹션 에디터/


pils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