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병원문화 이젠 바꾸자 <하> 보건당국·병원간 불통이 화근

후진적 병원문화 이젠 바꾸자 <하> 보건당국·병원간 불통이 화근

‘병상 수와 외형에서 밀리면 끝’ 불통문화 초래 수익 우선하는 기업 마인드도 메르스 사태 키워 “1차 진료 소견서는 참고사항일 뿐…” 무시하기도

#. 경기도 이천에 사는 김모(62) 씨는 지난달 황달과 소화불량을 겪다가 인근 병원에서 혈액검사 등 기본검사와 CT, MRI를 찍었다. 담당의사는 검사결과 간암말기가 의심된다며 당장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다. 급한 마음에 1차병원의 소견서와 CT, MRI 사진을 가지고 서울의 한 대형병원을 방문한 김 씨는 처음부터 모든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했다. 담당주치의는 “1차 진료기관의 소견서는 참고사항일 뿐이고 CT와 MRI 사진도 다시 찍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김 씨가 이미 찍은 사진인데 또 찍는다고 뭐가 다르냐고 문의하자 주치의는 “CT나 MRI의 경우 기종이 다를 경우 우리 병원에서 판독이 어려울 수 있고 우리 병원같은 대형병원의 숙련된 영상의학과 전문의와 지방의 군소병원의 판독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 결정은 알아서 하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대안이 없던 김 씨는 울며겨자먹기로 할 수 없이 또 다시 큰 돈을 들여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병원 간, 또는 당국과 병원 간 정보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아 파장을 더 키웠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메르스 진원지가 된 삼성서울병원이 부분폐쇄에 들어간 가운데, 한산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이번 메르스 사태는 병원 간, 또는 당국과 병원 간 정보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아 파장을 더 키웠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메르스 진원지가 된 삼성서울병원이 부분폐쇄에 들어간 가운데, 한산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이번 메르스 확산사태는 그동안 우리나라 병원들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소통이 서로 안되고 있는지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2차 유행’을 불러온 삼성서울병원은 최초감염자를 발견해 보건당국에 보고한 병원이다. 하지만 최초감염자가 다시 평택성모병원으로 내려가 3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그중 슈퍼전파자가 다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내원했음에도 이를 방치하다 대규모 감염사태를 불러왔다.

삼성서울병원 측은 “보건당국에서 우리에게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을 거쳐 온 환자라는 사실을 통보를 하지 않아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이후 확진판정을 받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이송요원이 관리대상에서 제외돼 약 일주일간 근무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관리소홀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삼성서울병원이 가장 큰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환자 사실을 확인하고 이틀 뒤에 발표한 늑장대응을 했기 때문”이라며 “삼성서울병원은 2차유행 조짐시 의료진과 환자 위주의 800명을 모니터링했지만, 보호자와 방문객을 포함해 약 2300명에 대한 역학조사를 진행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삼성서울병원이 자체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 보건당국이 개입하지 않았고, 이는 결국 삼성에 대한 보건당국의 봐주기였다는 주장이다. 정 국장은 또 “병원은 환자를 확인하자마자 신고했다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틀이 지나서 발표한 것은 병원 경영에 미칠 발표의 파급력을 감안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대형병원 간 불통은 심각한 수준이다. ‘병상 수와 외형에서 한 번 밀리면 끝’이라는 마인드로 점철된 구조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 현대와 삼성이라는 두 대기업이 병원을 설립하면서 병원에 서비스와 경영마인드라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지만 이후 시작된 병원들의 몸집불리기와 외형경쟁은 도가 넘는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최근에는 암병원 만들기 경쟁이 벌어지면서 우후죽순으로 암병원이 생겼지만 의료의 질이나 환자들이 느끼는 서비스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문제는 경쟁이 심해지다보니, 다른 병원들까지도 서로 정보 공유를 꺼린다는 점이다.

병원이 대형화 되고 일부 병원으로의 쏠림현상이 심해지면서 너도나도 이른바 ‘빅5’ 병원으로 몰리는 현상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대형병원들의 응급실은 ‘도떼기 시장’으로 불린지 오래일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방문자 통제도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병원이 병을 옮기는 온상이 된 것도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한편 대형병원들의 폐쇄적이고 수익을 우선시하는 문화도 메르스 사태를 불러온 이유 중의 하나로 거론된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의사는 “대형병원이 기업마인드를 도입하면서 의사들의 의견보다는 모기업의 정책들에 우선순위가 정해지는 문제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메르스 확산에 대해 ‘병원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새누리당은 총체적인 확산 사태와 관련해 민간 병원의 책임을 따지는 문제는 시기상조라며 신중한 입장이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국가 통제망을 벗어난 ‘재벌 대형병원’의 제도적 악폐가 사태를 키웠다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메르스 부실대응 책임에서 역시 자유롭지 못한 정치권의 포퓰리즘 공세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병원들이 과당경쟁을 벗어나 최소한 정보공유 시스템은 갖춰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김태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