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여자 아나운서 - <3·끝>
‘베이스볼S’ 주중진행자 활약 골프채널서도 뛰어난 감각 발휘
결혼후 더 성숙… 후배들엔 롤모델 “항상 낭떠러지 앞에 선 기분… 그래도 나만의 흔적 남기고 싶어”
스스로에겐 ‘시험무대’였다고 한다.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김민아(33)는 지난해 MBC 스포츠플러스를 떠나 SBS스포츠로 몸을 옮겼다.
“여배우들이 청춘스타로 활동하다가 여주인공의 친구, 엄마 역할로 돌아서야하는 시기가 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역할 변화에 대한 각오를 해야하는데,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죠.”
1년 전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갑작스러운 이직과 얽힌 이야기를 오랜만에 꺼내며 김민아는 이렇게 말했다.
‘야구여신’으로 불리며 몸 담았던 채널의 얼굴이 됐던 김민아는 매순간 치열했다. 스물다섯 살에 MBC스포츠플러스에 입사해 스포츠 아나운서로 육성됐고, 4년 넘게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오랜 시간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고, 업계의 편견에 맞섰다. 스스로는 “늘 일등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스포츠팬의 사랑을 받았고 업계에선 최고의 베테랑 아나운서로의 자리에 올라있다.
후배들은 주저없이 김민아를 ‘롤모델’로 꼽는다.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앞서 보여주고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선배”(윤태진 KBSN 아나운서), “이름만으로도 만감이 오가게 하는”(정인영 KBSN 아나운서), “후배들의 멘탈을 형성해주는”(김선신 MBC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 선배다. “이것 또한 지나간다”, “버티는 사람이 강한 것”이라며 “중심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민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채널을 아울러 경쟁하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 김민아가 가는 길은 후배들이 입을 모아 말하던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었다. 야구장을 누비며 선수들을 만나고, 노련하게 경기를 간파하고, 한 시간 방송을 애드리브로 채울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선배 김민아는 소위 ‘야구여신’이라는 수사를 붙은 여자 아나운서로는 유일하게 결혼 이후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방송3사 매거진 프로그램 진행자 중 유일하게 서른을 넘겼다. “우리가 걸어가야할 비포장도로에 아스팔트를 놓아준”(김선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은”(배지현 MBC스포츠플러스) 선배라며 후배들은 조용히 응원한다. ‘야구장의 꽃’으로 불리며 각자의 지위를 만들어온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의 유달리 짧은 수명 앞에서 김민아는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을 고민했다. 새로운 얼굴을 요구하는 업계에서 “‘전문성’만이 ‘롱런의 비결’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달렸다. “누구도 아마추어를 원하지 않는 프로의 세계”라는 확신으로, “‘꽃들의 전쟁’에서 꽃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서른을 넘기고 업계의 현실을 마주하는 김민아에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한다는 것은 무게였다.
“김경문 감독이 가장 힘든 것은 내 경쟁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스포츠 아나운서도 야구선수와 같죠. 그 때엔 별 것도 아닌 모든 것들이 서운했어요. 서른을 넘기며 일년 뒤를 꿈꾸는 것도 힘든 나이가 됐고, 직업인으로서의 김민아가 아닌 후배를 육성하는 선배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만 같았죠. 시선이 따가웠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한 때였죠.”
일 년 사이 결혼과 갑작스러운 퇴사ㆍ이직으로 잡음은 적지 않았지만, 폭풍우처럼 휘몰아친 일 년을 보낸 뒤 김민아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졌다. 골프 전문 채널과 피겨 중계권을 가진 SBS스포츠에서 “야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지만 매거진 프로그램 ‘베이스볼S’의 주중 진행자로 다시 야구팬들과 만나고 있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듯” 전 직장을 떠나고, 새로운 환경을 만난 김민아는 이전과는 달리 ‘꽃’이어야 했던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나이듦에 대한 강박도 조금은 내려놨다.
“예전엔 꽃의 역할을 하는 아나운서의 예쁘고 섹시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면 지금은 사십대가 넘은 노련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리포터들이 등장하는 해외 채널을 많이 본다”며 “이젠 마음의 준비가 됐고, 인생의 시선이 달라졌다. 나의 선택을 하고 싶다”고 편안하게 말했다. 9년차 직장인이 되고,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험난하게 이어졌던 지난 시간을 보낸 김민아는 “본격적인 스토리는 올해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 그동안은 가치관의 문제였다면, 이젠 출산, 육아를 만나야 하는 현실적인 선택 앞에 놓여있다”고 했다.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로의 삶, 아내이자 엄마가 될 김민아의 삶은 새로운 시작을 앞뒀기에 스스로도 자신의 선택이 궁금하다. “주위에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돌아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하지만 환경이 달라졌는데 네가 오겠냐는 의문도 제기한다”고 말한다. 늘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했고, 스스로가 주체가 돼 선택권을 가진다는 생각을 못했지만 이젠 행복할 수 있는 결정을 하고 싶다”고 했다.
‘네버엔딩 스토리’라고 말할 만큼 “쉽게 결론내일 수 없다”는 업계의 현실과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한 고민도 여전하다. 전문성을 갖춰 정보를 전달하고 경기를 분석해야 하는 ‘직업인’임에서 준연예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직군인데다,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진행자 자리에 ‘대체제’가 많다는 인식은 그간 수많은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지각변동을 이끌었다. “돌이켜보면 어느 하나로는 일등인 적이 없었다”는 김민아는 현재 배움의 갈망으로 피겨 국제심판 자격증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자신이 돌아올 수 있는 자리도 꿈꾼다.
“지금도 매일 저녁 스튜디오 의자에 앉으면 낭떠러지에 있는 것 같아요. 한 번의 말실수로 저 아래로 굴러떨어질 수 있죠. 매일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내일이라도 당장 끝나버릴 수 있다고요. 누군가의 꿈이 되고 싶다는 거창한 바람을 가지진 않았어요. 하지만 휩쓸려가는 방송계에서 반면교사가 되든 롤모델이 되든 저만의 흔적을 남기도 싶어요.”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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