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C=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어젯밤 피곤한 김에 머무른 숙소가 불쾌해서 일어나자마자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는다. 50루피(850원) 더 내고 깨끗하고 쾌적한 숙소로 옮긴다. 힘들어도 두 군데 이상 둘러보고 숙소를 정하고 다녔는데 동행이 생겼다는 흥분에 잠깐 정신이 없었나보다. 늦게 일어나 프렌치 토스트로 브런치를 먹는다. 사람은 없지만 레스토랑들은 깨끗하고 아기자기하다. 아침에 보니 여기는 작은 마을인데도 깔끔하고 예쁘다. 북인도와는 다르다. 한겨울인데도 날씨는 덥고 거리나 가게는 더 깔끔한 느낌이다. 어젯밤에 말 걸던 가게 점원들이 한국인이라는 걸 기억해 뒀다가 코리언을 외치며 호객을 한다. 여행 성수기가 지난 건지 지나가는 여행자들보다 가게 앞의 점원의 수가 더 많다. 헌책을 대여해주고 커피와 과자를 작은 가게가 있다. 사진 찍으라며 멋지게 따라 주는 커피와 수제 비스켓을 먹으며 동네 구경을 한다. 대문이 예쁘기도 하고 대문 앞의 땅바닥에 날마다 그려놓은 꼴람이라는 기하학적인 그림도 멋지다. 북인도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이다. 가는 길에 옷을 수선하는 가게에 들어가 복대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여권이나 큰돈을 간직할 복대를 사지 않고 여행할 때마다 늘 면으로 만들어 쓰는데 이번에 만들어 온 게 한 개 밖에 없어서 내 것을 보여주고 비슷하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 어젯밤 내 핸드메이드 복대를 보고 부러워하던 동행도 한 개 만들고 싶어 한다. 가격 흥정을 하니 아저씨는 좀 귀찮은 듯 “빅 잡 스몰 머니”라며 툴툴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건 인도에 왔으니 재미로 해보는 거다. 큰 길로 나가보니 단체관광객인 듯, 같은 디자인의 빨간 사리를 입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 대형버스에선 계속 사람들이 내린다. 이곳이 현지에서 유명한 관광지임은 틀림없다. 마말라뿌람은 지금은 이렇게 작은 도시지만 원래 의미는 ‘위대한 전사의 도시’라고 한다. 1400년 전 팔라바 왕조의 군사기지였던 곳으로 지금도 석공예 유물이 남아있다. 이 팔라바 왕조의 후예들은 석공예 기술이 뛰어나서 지금도 거리에서 직접 만든 펜던트나 보석함을 팔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걸 팔려고 몇 번을 와서는 내가 살 의지가 없다는 걸 알고도 옆을 떠나지 않는다. 한국어로 간단한 호객을 할 수 있는 말을 가르쳐 달라는 거다. “안녕하세요”, “안 비싸요” 등 알려준 말들을 연습하고는 눈을 찡긋하며 사라진다. 여행지에서 주민들이 외국인을 보면 대부분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를 먼저 묻는다. 한국 사람이라 답하면 남한에서 온 거냐 북한 출신이냐가 항상 두번째 질문이다. 그런데, 여기 마말라뿌람에서는 뭔가 다르다. “여기 여행 온 거예요? 아니면 일하러 온 겁니까?” 당연히 여행 온 거지, 인도에 무슨 일을 하러 온다는 말일까 궁금해서 이유를 되묻는다. 알고 보니 첸나이에 현대 자동차 공장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직원인 한국인들이 첸나이에 많이 거주하는 편이고 손님 접대나 휴식차원에서 마말라뿌람에 오는 것이다. 아까 펜던트를 파는 아저씨가 그렇게 열심히 한국어 단어를 묻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이제 폐허가 된 사원에서 시작해서 인도인 관광객들과 함께 석공예를 보러 동굴 산으로 간다. 석공예가 아름다운 아주르나의 고행상 앞에 선다. 거대한 바위에 인도신화가 조각되어 있다. 한쪽 다리를 들고 있는 아르주나, 고행하는 고양이 그 앞의 쥐들, 쉬바신상 등 하나하나 스토리가 있어서 천천히 살펴보면 재미있다. 특히 저 큰 코끼리는 실제 코끼리와 크기가 거의 같다고 해서 더 유명하다. 설악산 흔들바위와 비슷한 크리쉬나의 버터볼은 굴러 떨어질 것 같은데도 균형을 유지하며 그렇게 서 있다. 햇볕이 따가워서 그늘에 앉아 동행과 이야기를 나눈다. 옆의 잔디에서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시선이 마주친 사람들은 인도여자들이다. 바로 달려와서는 사진을 찍자고 한다. 할일 없는 여행자는 흔쾌히 그러기로 한다. 첸나이의 대학병원 소속 간호사인 이 여자들은 단체로 이곳에 여행 왔다가 지금 자유시간이라 쉬는 중이다. 가장 유쾌한 사람은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둘 있는 서른 두 살의 유부녀다. 이 분이 수간호사고 대부분은 20대 초반이다. 서른 두 살짜리 인도아줌마 역시 결혼 안한 내가 이상해서 몇 번을 되묻는다. 바라나시에서 마흔 다섯인 인도 독신여성 몰리카도 만났건만 대체적으로 인도에선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은 게 무슨 구경거리나 되는 것 같다. 여자들이어서 그런지 수다가 재미있다. 가방에서 화장품을 꺼내 보여주기도 하고 금팔찌를 벗어서 끼워 주기도 한다. 자신들의 검은 피부색에 비해 하얀 편인 피부를 부러워하며 손을 잡기도 한다. 자신들의 단체사진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진속의 남자들이 의사라며 어떤 사람을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어떤 젊은 사람을 가리킬 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이구동성 멋지다고 이야기한다. 힘들게 일시키는 과장님과 인기 많은 신입사원이 근무하는 직장,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비슷비슷해서 더 웃음이 나온다. 다시 마을을 지나 바닷가로 간다. 마말라뿌람은 벵골(Bengal)만에 연한 해안도시다. 인도의 동부 해변 중에서도 유명한 해변이라고 한다. 여기가 인도의 해변임을 알게 해 주는 것은 모래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소들이다. 인도는 소들의 천국 맞다. 어디서 만나든 바다는 넓은 품으로 사람을 맞아준다. 아무렇게나 바지를 적시며 바다에 빠질 수 있는 지금, 낯선 곳에서의 자유를 만끽한다. 바닷가를 거닐며 동행과 대화를 나눈다. 마말라뿌람은 남인도로 다가가는 창이 되어주고 벵골만 바다의 넉넉함은 동행과의 거리도 좁혀준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인상을 남기고 헤어진다. 아등바등 하지 않으며 마음의 여유가 있고 생각도 깊어 보이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도 안다. 일상보다 여유있고 관대해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것은 개인 품성의 문제라기보다 여행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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