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배우 온주완(32)의 필모그래피는 독특하다. 사실 그는 충무로의 새로운 유망주로 출발을 알렸다. 2004년 영화 ‘발레교습소’를 통해 관객과 만났을 때였다.
“첫 영화였어요. 사실 첫 작품 이후 어떻게 10년을 갈 거란 생각을 할까요. 왜 연기가 좋았냐고요? 그 땐 필름카메라로 영화를 찍었는데, 줄자로 거리를 재서 포커스를 맞춰야했어요. 줄자가 덜덜덜덜 소리를 내면서 오는데 그 소리에 심장이 뛰더라고요.”
어느새 11년차 배우가 된 온주완은 여전히 첫 영화로 가슴이 뛰던 시간을 기억한다. 무용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덜컥 오디션을 봤는데, 변영주 감독은 “가수지망생인 줄 알고 캐스팅을 안 하려 했다”고 한다. 그 뒤로 수없이 많은 작품을 만났다. 변영주 감독과의 인연이 두 번째 영화 ‘태풍태양’으로 이어지며 ‘발레교습소’ 이후 금세 새영화를 찍게 됐다. 지난 10여년간 온주완이 연기했던 캐릭터는 제각각이었다. 잔혹한 살인마(‘더 파이브’)였고, 고단한 청년백수(잉여공주)였으며, 천하의 변절자(‘펀치’)였다. 심지어 예능 안에선 여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사랑꾼’이라고도 불렸다.
지난달 종영한 SBS 드라마 ‘펀치’는 지난 10년간 쌓아온 배우 온주완의 필모그래피 만큼이나 그의 이미지를 혼란스러워하던 중년층 이상 세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애초엔 키다리아저씨 캐릭터”였던 이호상은 드라마 중반 이후 ‘펀치’에 대반전을 안기는 ‘핵’으로 등장했다. 절친이었던 박정환(김래원 분)을 배신하고, 윤지숙 장관(최명길 분)까지 손아귀에 틀어지려 했다. “사람이 변하는 건 한 순간”이라지만, 덕분에 온주완은 드라마 이름을 따서 ‘호레기’, ‘호발놈’이라는 새로운 별명도 얻었다. 온주완에겐 그동안 연기했던 수많은 얼굴의 배역들이 하나로 응집돼 폭발하던 시간이었다. “20대에 하는 것과 30대에 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미 한 번 만났던 역할은 하고 싶지 않아요. 해봤기 때문에 익숙하고 무난하게 잘 할 순 있겠죠. 저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해봤으니까 잘 하나 보다 할 거예요. 대중은 그것보다는 의외성을 높이 평가하거든요.”
대중이 원하는 지점과 변화를 갈망하는 개인의 성향이 만나니 온주완은 10년간 차분히 내공을 쌓았다. “변화가 안정적이지는 못해도 스스로 발전할 기회가 된다”는 그는 “불안정하고 시간이 걸리더라고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저라고 왜 남들처럼, 혹은 누구처럼 톱스타가 되고 싶지 않았겠어요. 매번 작품에 기대를 걸었고, 고배도 마셨죠. 제 프로필을 보면 작품들이 들쑥날쑥해요. 주연을 했다가 조연을 했다가 우후죽순 쏟아진 작품 숫자만큼이나 오르락내리락 하죠. 그런 걸 보면서도 열심히 살아왔구나 싶어요. ‘스타가 아니어도 좋아, 잘 버텨줘서 고마워.’ 칭찬해주고 싶어요.” 배우가 아닌 30대 온주완의 삶은 지극히 평범하다. “다들 의외라고 하지만” 술은 한 잔도 못 마시고, 촬영 없이 쉬는 날엔 집 안 구석구석 청소하는 걸 즐긴다. 연애는 이제 막 시작했다. 드라마 ‘잉여공주’로 만난 신인배우 조보아가 그의 여자친구다. 결코 많지 않은 나이지만 30대가 되니 “나보다는 우리가 즐거운 걸 추구하게 된다”며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커진다. 친구든 애인이든 일이든, 그럴 수 있지 뭐. 이런 생각을 가지려고 훈련” 중이라고 한다.
“전 일상에서까지 연기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일을 하고 있을 때 충분히 감정을 소비하니, 일상에선 이성적으로 지내요. 앞으로도 마찬가지고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연기를 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고, 흥미를 느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운이 좋으면 괜찮은 배우라고 인정받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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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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