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기관 리포트대로라면 코스피 3000 시대도 진작에 왔겠죠”
매수 일색인 기관 리포트에 대해 최근 만난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사석에서 이렇게 비꼬았다. 그는 “기관 리포트를 참고해 투자에 나서는 사람이 어디있겠냐”고도 했다. 아픈 자조였다.
한국은 세계 증시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만큼 개인투자 규모가 크기로 소문이 나있다. 고객 수익과는 별개로 ‘확정 수수료’만을 떼가는 증권사가 신뢰를 잃은 게 이유다. 신뢰 상실의 ‘고질중 하나’는 바로 온통 매수 의견만 적힌 리포트란 지적이다.
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4년간 한국 증권사들이 낸 기업 리포트 가운데 매도 리포트는 0.1%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외국계 지점이 9.2%나 되는 매도 리포트를 쏟아 낸 것과 비교하면 큰 격차다. 매력없는 기업에 대해서도 매수 의견을, 가능성 낮은 기업에 대해 증권사들이 서둘러 목표가를 높여잡을 때, 개인들은 주변의 ‘소문’에 관심을 기울인다.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으라’는 오래된 증권 격언은 기관들이 아파해야 할 통찰이다. 신뢰가 바닥이란 얘기다.
증권사들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이었다. 한화투자증권이 ‘고객 신뢰’를 최우선으로 내걸고 ‘매도 리포트 혁명’을 시도했다. 1년이 지났다. 업계엔 변화가 감지된다. 한화 이후 키움, 메리츠종금, 동부도 매도 리포트 대열에 동참했다. 법인영업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증권사들은 기업에 불리한 투자의견을 제시치 못한다는 통념을 깬 것이다. 금융투자협회 황영기 회장도 최근 “과감히 매도리포트를 내라”고 일갈했다.
그간 반발도 적지 않았다. A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한화 애널들을 만나면 푸념만 한다. 그들이 리포트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고 했다. 또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매도의견 할당제라는 것이 말이 되냐”고 했으며, 또다른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의 욕설 전화가 빗발치는데 언제까지 버틸 지 보고 있다”며 웃었다. 변화에 수반되는 ‘반동(反動)’이다.
삼성증권 윤용암 사장이 ‘고객 수익률 최우선 경영’을 표방한 것을 두고도 업계에선 말이 많다. 윤 사장은 최근 “영업조직의 평가 보상제도를 철저히 고객 수익률 중심으로 삼겠다”고 했다. 고객의 수익률이 높을 경우 해당 직원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평가 비중을 조정하겠다는 의지였다.
당장 증권업계에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고객 주식 관리를 위해 열심히 주식을 팔고 산 직원 보다, 좋은 종목 하나를 찍어 높은 수익률을 낸 직원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게 말이 되냐는 설명이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많이 팔고 사야 증권사들이 수수료를 취할 수 있다. 의지는 좋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들의 변화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고객의 신뢰가 없으면 증권사들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미약했고, ‘반동’은 거셌지만 변화하지 않는 업계엔 미래가 없다. NH투자증권 김원규 대표가 올해 1월 “고객 신뢰도 1위 회사로 도약하자”고 밝힌 것도 ‘고객’ 없는 증권사들은 생존키 어렵단 점을 지적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