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ㆍ박수진 기자]결국 ‘뇌관’이 터졌다. 통상임금이다. 비교적 큰 파편을 맞은 쪽은 재계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8일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함으로써 재계는 추가 임금부담이라는 큰 짐을 지게 됐다. 노동계와 재계의 초미 관심사항이자, 오랫동안 힘겨루기를 했던 현안은 노동계의 우세승으로 끝난 셈이다.
하지만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이번 뇌관은 폭발음을 냈지만, 상대적으로 더 큰 폭발음의 뇌관은 잠복 중이다.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로 인해 어찌됐든 모든 현안이 정리됐으면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단 내년 산업현장에선 사상 최악의 임단협 투쟁이 예고된다. 대법원이 노동계와 재계 입장을 비교적 동시에 고려했다곤 하지만, 어정쩡한 소급문제와 명확치 않은 통상임금 범위를 남겨놔 2014년 노사가 사활을 건 ‘춘투(春鬪)’ 속에 빠져들 수 있어 보인다. 그동안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지침에 따라 결정했던 시스템에서 벗어나 새 기준을 적용해야 하기에 노동시장의 카오스(혼돈) 시기를 맞은 헤게모니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될 게 뻔하다.
대법원에 계류중인 14건과 전국 법원에 접수된 160여건의 통상임금 소송 외에도 전국 각지 산업 현장에서의 산발적인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란 점도 재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재계가 통상임금 범위와 새 임금체계를 둘러싸고 ‘소송의 한해’를 보낼 것이라는 자조섞인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김동욱 경총 홍보기획본부장은 “노사자치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향후 산업현장의 임금 수준 및 항목 결정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이런 과정에서 내년 임단협은 쉽지 않은 길로 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대법원 판결로 인해 기업들이 임금체계의 대손질을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노사가 유리한 국면을 차지하기 위해 막판까지 싸우다 등을 돌리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렇게 되면 내년 경제엔 노사의 암운이 짙게 깔릴 수 밖에 없다. 4대그룹 노사 담당자는 “내년에는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등 통상임금 외에도 핵폭탄이 될 만한 이슈가 산적해 있다”며 “통상임금 판결을 계기로 노 측에서 다른 사안도 대공세를 펼칠 수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재계로선 이래저래 부담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추산대로라면 판결 이후 첫해 산업계는 13조7500억원, 다음 해에는 매년 8조8000억원의 추가 임금부담이 예상된다. 당초 경총이 3년 소급분까지 적용해 걱정했던 38조원보다는 훨씬 깎였지만, 각 기업이 받아들여지는 체감온도는 식을대로 식었다.
재계는 당장 투자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임금 부담→생산성 악화→투자 위축→해외공장으로의 가속 이전→일자리창출 약화’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국의 고비용 구조를 견디지 못해 GM 등 외국계 기업이 속속 떠날 것이라는 경고음도 들린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기업들이 노동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투자 위축 가능성이 크고, 크고 작은 소송을 대비해 현금을 쌓아두려고만 해 경제 선순환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며 “외국인의 국내 투자도 상당히 영향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업계는 당장 내년 경영시나리오를 다시 짜야하게 됐다. 위기의 업종일수록 더하다. 현재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인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내년도 예산안과 경영계획을 수립하는 시기인 데, 이번 판결로 방향 재설정이 불가피해졌다”며 “임금 체계를 다시 손보는 작업은 만만치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