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호 문화원장 “후손들 방한 추진”
북마리아나제도 자연·문화·감동여행⑦
[헤럴드경제(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 티니안)=함영훈 기자] 남서태평양 섬에 징용됐다가 차모로인과 결혼한 한국인 후손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어서 그랬을까.
사이판 코 앞에 있는 티니안섬은 ‘작은 고추가 맵다’는 한국 격언처럼, 세계 최고의 자연산 ‘작은 고추’를 보유한 곳이다. ▶이 기사 하단, 사이판,티니안,로타 북마리아나제도 자연·문화·감동여행기 글 싣는 순서]
티니안 등 마리아나 제도 음식 문화의 특성에 영향을 주는 도니살리(Donne-Sali)는 매운 소스나 고추 가루로 만들어져 사용되는데, 이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는 바비큐에도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도니 살리는 차모로 가정 마다 다른 레시피의 매운 소스를 만드는데 활용된다.
청양고추나 서양식 페퍼는 꼭지를 위로 둔 채 아래로 매달려 자라지만, 티니안 도니살리는 그 반대이다. 꼭지를 아래에 두고 하늘로 솟을 듯이 바짝 서 자란다. 가지에 붙은 형태가 뾰족한 피라미드 형이다.
▶도니가 살리를 만날 때= 중국 남부나 동남아 일부 지역 처럼 인공적 손길로 경작한 것이 아니라, 티니안 핫페퍼 야생 품종은 식성 좋은 새, ‘살리(Sali)’가 정글이나 들판에 남은 고추(도니:Donne)를 먹고 미처 소화시키지 못한 채, 씨를 삼킬 때 원형 그대로 티니안 곳곳에 배설하면서 유지된다.
‘마이크로네시안 스탈링(Micronesian Starling)’인 살리는 가마우지나 까마귀, 꿩 또는 비둘기의 모습을 합쳐놓은 것처럼 생겼다. 검은색 뚱뚱한 까투리라고나 할까.
오랜 전통의 티니안 핫페퍼 축제는 매년 2월 피에스타 그라운드에서 열리는데, ‘매운고추 많이 먹기 대회’는 선수 본인은 물론 구경하는 관객들의 속 까지 타들어가게 만들고,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핫페퍼 축제 무대, 한국 후손 줄어= 그러나, 티니안 성인 무용단과 아이들의 공연은 관객과 여행자의 찡그리던 얼굴을 다시 활짝 펴준다.
무대에는 늘, 한 눈에 보아도 한국인 후손이라는 느낌의 아이들이 보였는데, 근년들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야생에서 도니살리를 따오면, 물에 넣어 30초 가량 끓임으로써 1차 살균을 한다. 이어 마늘과 식초, 레몬파우더, 소금 등을 넣고 갈아 겔 상태로 만든 뒤 다시 한번 가열해 2차 살균을 한다. 마늘은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넣는다.
작은 병 하나에 도매가 15~20달러, 소매가 25달러 가량 한다. 이에 비해 인공경작한 작은고추는 8~10달러 수준이다. 정글에서 도니살리를 따고 이를 살균, 가공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도니살리 소스 가격이 결코 비싸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 가져와 일반라면을 얼큰 라면으로 둔갑시키려면, 팥알 만큼만 넣으면 된다.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는 사천식 짜파구리로 돌변한다.
▶본토 유학가면 현지 눌러 살아= 티니안 핫페퍼 축제를 이끌던 한국인 후손들은 왜 줄었을까.
성진호 티니안 한국문화원장은 “한국인 후손들은 늘 이 지역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는데, 미국 본토 대학들의 낙도 지역 균형인재 전형 덕분에, 티니안 등 마리아나제도 한국인 후손들이 어김없이 하버드, 예일 등 미국명문대에 속속 진학했고, 일단 미국에 가면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 10명 중 3명이라던 한국인 후손은 지금 많아야 10명중 1명이다. 현재 티니안 시장의 부인이 김(깅)씨이다”라고 전했다.
오키나와 등지를 떠난 미군 부대가 티니안에 들어오기로 되어있다. 요즘 이들을 맞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고향 티니안을 떠난 인재들 일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싹트고 있다.
지금은 고향을 떠나 미주와 아태지역 어디에선가 활약하고 있는 티니안 한국인 징용자 후손들은 자신이 한국계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청소년기에는 K-팝 팬이 되어 한국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기도 한다.
▶“증조,고조할아버지 문화 알려주고파”= 성진호 원장은 티니안 한국인 후속들의 한국방문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카자흐스탄에서 민간활동가로 일 하던 시절, 고려인 동포 고국방문 성사시켰다. 성 원장은 고려인에게 그랬듯이, 티니안,사이판 한국인 후손들에게도 한글을 가르치고 싶다는 목표도 피력했다.
그는 티니안 장제징용 한국인과 그 후손에 대해, 사료 등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강제 징용은 일본제국주의 정부 기관인 남양청과 조선총독부가 주관해서 했습니다. ‘조선인은 돼지와 같다’는 멸시 속에 여러 지역 출신 징용자 중 가장 큰 고초를 당했다고 합니다. 1944년 미-일 전투 때 수만명의 징용자 대부분이 사망하고, 1946년에 있었던 고국 송환 때엔 사이판 1354명, 티니안 2541명으로 기록돼 있어요. 티니안에 징용자와 희생자가 사이판 보다 많았음을 알 수 있죠. 차모로여인과 결혼한 징용자들은 잔류했는데, 김씨는 킹씨로, 신씨는 싱씨로, 강씨는 기오싱으로, 전씨는 마쓰모토로, 차모로인들이 부르기 쉽게 발음이 달라졌습니다. 마치 일본인 후손이라는 오해를 일으키는 마쓰모토는 당시 남양군도 개발을 담당했던 한국인 전 모씨가 일본 공기업의 노무사로 일하면서 창씨개명 했던 성입니다. 전씨는 눈치껏 한국인들을 보살피다 큰 반감 없이 티니안에 눌러앉았다고 합니다.”라고 전했다.
▶맵고 똑똑한 DNA 어디 안갔다= 차모로인들도 일제에 많이 학살당했기 때문에 미국의 승전후 괌에서는 패전후 귀국 못한 일본인 전범들만 보면 원주민들이 몽둥이로 혼쭐내던 분위기여서 동굴에 수십년간 숨어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티니안 주민들은 전 씨와는 상생하며 살았다고 한다.
성 원장은 “모계가 한국이었다면 언어와 문화가 남아있을텐데 차모로인 엄마로부터 차모로 언어를 영유아때부터 배우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사라졌고, 4세대까지 내려오면서 한국인 유전자는 11.5%만 남아, 희미해졌다”면서 “그럼에도 이들의 증조, 고조할아버지의 나라, 즉 제2고국 방문 프로젝트가 성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인 후손들은 마리아나제도가 배출한 인재로서, 매운 맛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사이판,티니안,로타 북마리아나제도 자연·문화·감동여행기 글 싣는 순서 ▶5월13일 ▷원폭 출격한 티니안 가보니, 푸른 파라다이스였다 ▶5월14일 ▷국제 먹방 대회 1위 한국인, 선명한 복근 과시 ▷숨은 보석섬 티니안, 열 빛깔 바다를 품었구나 ▶5월20일 ▷사이판서 등산,승마? BTS순례코스 까지, 즐길 것 늘었다 ▷타포차우산 등정하니 비로소 지구는 둥글다 ▷삼성부터 리틀야구까지 온국민 징용 희생자 추모에, 공군사관 생도들 “나라 꼭 지켜내겠다” ▶5월23일 ▷호기심 천국 티니안 한바퀴..“하루속히 배 띄워야” ▷“작은 고추가 맵다” 티니안 페퍼와 한국인 후손들 ▷티니안 동해에서 서해까지, 선샤인&다크 투어 가이드 ▶5월 27일 ▷여행 구색에서 없는 것 찾기 힘든 사이판 버라이어티 ▶6월 2일 ▷제2그로토, 로타홀을 아시나요? 사이판-티니안-로타의 액티비티 ▷마리아나 헤리티지여행, 태평양을 다 품었다..미키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