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급등에 분담금 늘어
재건축·재개발 메리트 실종
시장 침체 맞물려 호가 하락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는 최근 호가가 4억500만원선까지 떨어졌다. 전용 31㎡ 단일 평형으로 이뤄진 840가구 규모의 이 아파트는 재건축을 추진하며 시장이 뜨거웠던 2021년에는 8억원에도 팔렸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에 지난해에는 4억원대로 실거래 가격이 빠졌다. 지난달에는 2019년 10월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인 4억4000만원에 손바뀜됐다. 현재 온라인상 매매 매물은 약 30건인데, 호가는 4억원 중반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집주인들이 호가를 낮추는 것은 부동산 경기가 다시 얼어붙은 와중에 재건축 추가분담금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조합 집행부는 지난해 예상 공사비 등을 근거로 분담금을 추산했는데, 소유주가 전용 84㎡ 새 아파트를 받으려면 가구당 분담금이 5억원에 달할 것으로 계산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되자 시공사 교체 추진, 시공사의 맞불 소송 등 갈등이 커지고, 사업 기간은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졌다.
최근 정비업계에선 이처럼 시공비 협의에 따른 갈등을 겪는 일도 부지기수다. 가령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잠실진주 재건축은 시공사 삼성물산과 수개월째 공사비 협의를 놓고 씨름 중이다. 시공사는 3.3㎡당(평당) 공사비 660만원을 889만원으로 올릴 것으로 요구했다. 서초구 방배삼익 재건축 조합도 평당 공사비를 545만원에서 621만원으로 올리는 안에 합의한 지 8개월 만에 시공사가 또다시 780만원으로 증액할 것을 요청해 갈등을 겪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업장이 공사비 협의 난항에 시공사 교체, 맞불 소송 등으로 사업 기간이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체될수록 공사비 상승, 금융 이자가 불어난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재건축·재개발이 끝나도 과거처럼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손에 쥐는 게 쉽지 않다는 인식도 늘고 있다. 집값 빙하기와 맞물리며 구축 아파트에 대한 메리트가 약해지는 배경이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분쟁기구 등을 통해 신속히 갈등을 해결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공사비 갈등은 재산권 다툼이므로 합의를 끌어내기 어렵다”며 “재건축 사업 규제 완화가 이뤄지더라도 비용 부담이 크고 시세차익 기대감은 약해지다 보니, 당장 재건축 매수세가 활발해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재건축 단지 하락 거래도 잇따르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 2단지 전용 83㎡는 지난달 18억5000만원(12층)에 팔렸는데, 지난해 같은 평형은 20억원에 거래된 바 있다. 서초구 신동아2차 전용 166㎡는 지난달 29억5000만원(8층)에 팔렸는데, 직전 거래인 2022년 3월 거래 가격(36억8000만원·13층) 대비 7억원 이상 내렸다.
실제 가격지수도 하락세다.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연령별 매매가격지수 통계를 보면, 전국 20년 초과 아파트는 지난해 8월 매매가격지수가 상승 전환했지만 세 달만인 지난 11월 하락 전환했다. 반면 15년 이하 아파트는 지난해 6월 상승 전환, 12월에서야 하락 전환했다. 20년 넘는 아파트의 매매 가격이 늦게 오르고 먼저 내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