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해 스발바르 군도의 피라미든.

1927년 이후 스웨덴으로부터 채굴권을 넘겨받은 소비에트 연방은 석탄 산업을 통해 이 지역을 급속 발전시켰다. 1980년대 이 곳은 인구 1000명이 넘는 현대화된 마을이었다. 그러나 이후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경제가 악화되면서 탄광은 폐쇄되고 광부들은 하나둘씩 고국인 러시아로 떠나게 된다. 버려진 탄광은 과거의 영화를 품은 채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버렸다.

사진을 미디어로 작업하는 한성필(43)이 또 한번 여행을 다녀왔다. 건물 가림막 작업, 일명 ‘파사트 프로젝트(Facade Project)’로 원본과 복제, 실재와 가상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작가다. 이번엔 북극과 남극이다. 인도네시아, 몽고, 사하라 사막 등에서 작업한 사진과 설치작품을 선보여왔던 작가가 오지를 넘어 극지(極地)를 탐험했다.

한성필 작가가 극지에서 찍은 사진 및 영상 신작 30여점으로 지난 8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종로구 북촌로)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타이틀은 ‘지극의 상속(Polar Heir)’.

전시 오픈에 앞서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에게 이토록 흔한 여행 사진, 혹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들고 나온 이유를 끈질기게 물었다.

▶참을 수 없는 ‘클리셰’의 무거움=“예전에는 누가 먼저 에베레스트를 찍는가가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그 곳을 왜 갔는지, 가서 무엇을 할 건지, 그리고 이 작업으로 어떤 여지를 남길 것인지가 문제다.”

사실 극지는 더 이상 탐험의 대상은 아니다. 배를 타고 북극을 ‘찍고’ 오는 것은 3000만원 정도의 큰 비용이 소요될 뿐인 관광상품에 불과하다.

때문에 작품의 소재로써 북극은 이제 진부하고 상투적이다. 참을 수 없는 클리셰(Cliché)의 가벼움. 작가는 예상이라도 한 듯 이를 무거운 주제로 비튼다.

“북극 사진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할 생각이었다면 우주를 유영해야 했을 거다. 그래야 가장 정확한 기록이 됐을테니까. 나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싶었다. 이 클리셰적인 소재를 통해 사고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그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는 상속(相續)의 개념으로 작품을 풀어 갔다. 정확히는 대자연을 상속받은 자들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로.

그의 말에 따르면 화산폭발로 멸망했던 로마 고대도시 폼페이처럼, 20세기 초 석탄산업으로 지구의 뗄감 역할을 했던 ‘에너지 도시’ 스발바르 군도 역시 지금은 빙하의 일부로 묻혀 버렸다.

남극해 사우스셰틀랜드 제도의 디셉션아일랜드도 마찬가지. 이 곳은 17세기 네델란드와 덴마크 고래잡이들이 포경기지를 두고 세력다툼을 하던 곳이다. 그러나 고래 개체 수의 급격한 감소와 함께 현재는 버려진 상태다.

“탐험의 역사는 정복의 역사다. 사람들은 그 지역을 정복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냥 왔다 갔을 뿐이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빌렸을 뿐, 자연을 정복하는 것은 결국 자연이다.”

▶빙하에 쌓인 인간과 자연의 역사…기억해야 할 것은 죽음=공간이라는 소재에 천착했던 작가에게 북극과 남극이라는 공간은 시간을 탐구하게 만들었다. 빙하가 간직한 시간의 층위에 켜켜이 쌓인 인간과 자연의 역사, 그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그래서 전시장에 걸린 그의 사진엔 곰도 펭귄도 없다. 남극과 북극이라는 자연 다큐멘터리의 클리셰를 벗어나기 위해 소재를 걸러냈기 때문이다.

그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를 물었다.

“작가들은 언제나 여행을 한다. 그것은 물리적인 의미의 여행이 아닌 정신적인 의미의 여행에 가깝다.”

작가적 관념을 실현시키는 방법으로 여행을 선택한 그에게는 정신적인 그 어떤 것 이상으로 물리적인 작업이 중요하다. 수십킬로그램이 넘는 카메라 장비들을 직접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카메라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조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평면적인 미디어지만 굉장히 개념적이다. 카메라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선택하고 단절해내는 것, 그래서 사진은 조각과 많이 닮았다“

이 개념적인 조각 작업을 위해 작가는 엄청난 시간을 사전 리서치에 투자한다. 이번 극지 작업도 3주 동안 이뤄졌지만 리서치는 5년이 걸렸다.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는 전시평을 통해 한성필의 작품을 “낭만주의적 자연 숭고를 다시 불러낸 작업”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위해 시각적으로 착취당하는 지연에 위엄을 돌려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아무리 인간의 탐욕이 거대하고 기술이 위대하더라도 결국 인간은 유한하며 언젠가 대자연에 묻혀버릴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일종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인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죽음이라는 점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며 전시의 의미를 찾았다.

사진으로 조각하는, 이 카메라 든 여행자의 다음 순례지는 섬이다. 인도네시어의 코모도아일랜드. 코모도드래곤을 찾아 1월중에 떠날 예정이다.

“어린 시절부터 정글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2004년 보르네오 섬을 갔을 때였다. 정글은 불타 있었고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오랑우탄까지 잡아 먹더라. 섬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고립의 장소다. 그 안에서 많은 변이가 일어난다. 이번엔 또 어떤 로망이 깨지게 될지 궁금하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