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앞세운 중국산 TV 가파른 성장
中 3사 점유율 30%…삼성·LG 넘어서
프리미엄 시장까지 도전장…공세 강화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 최근 이사를 한 직장인 A(37)씨는 10년 가까이 쓴 구형 TV를 안방으로 옮기고 거실에 새로 설치할 대형 TV를 알아봤다. 고민하던 차에 한 대형 할인마트 매장에서 중국 브랜드로 알려진 TCL TV가 눈에 들어왔다. A씨는 할인 혜택을 받아 TCL사의 75인치 TV를 145만원에 구매했다. 비슷한 성능의 국산 브랜드보다 2배 가까이 저렴한 것이 구매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A씨처럼 최근 국내에서는 가성비로 무장한 중국산 TV를 거리낌없이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TCL의 경우 지난해 쿠팡에서 4K 미니 LED TV C845 시리즈를 선보여 5분 만에 품절 사태를 빚기도 했다.
탄력을 받은 TCL은 지난 달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네이버에 공식 스마트스토어를 개설하며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현재 스마트스토어에는 TCL의 특정 TV 모델을 언급하며 국내에도 빨리 출시해달라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중국산 가성비 TV를 향한 국내 소비자들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글로벌 TV 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중국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중저가 시장 공략으로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며 한국 TV의 입지를 흔들고 있는 상황이다. 내년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도하고 있는 프리미엄 TV 시장에까지 도전장을 내밀며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TV 통계에서도 삼성과 LG에 가해지는 위협이 감지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TV 시장에서 TCL, 하이센스, 샤오미 등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물량을 쏟아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삼성전자가 시장점유율 18.3%로 1위를 유지했지만 그 뒤를 하이센스(12.5%), TCL(12.4%)이 바짝 추격하고 있다.
LG전자는 11.5%로 4위에 머물렀다. 샤오미(5.5%)까지 포함하면 상위 5개 TV 브랜드 중 3개가 중국산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합산 점유율은 30% 밑으로 떨어졌다. 양사의 출하량을 모두 합쳐도 중국산 TV에 미치지 못한다.
올해 들어 전 세계적인 고금리 환경과 경기 침체로 북미,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TV 판매는 부진을 피하지 못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생산량을 조절하며 숨고르기에 주력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액정표시장치(LCD) TV를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특히 ‘애국소비’ 경향이 강한 중국 시장에서 자국 브랜드의 인기가 높은 데다 남미와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에서도 중국산 중저가 TV가 적극 공략하면서 점유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다만 매출을 기준으로 하면 삼성전자가 29.9%, LG전자가 16.4%로 나란히 1,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TCL은 10.6%, 하이센스 10.6%, 소니 6.3% 순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화면·고화질의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하는 전략을 펼치면서 매출에서는 여전히 중국 기업들과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업계는 내년에 글로벌 TV 시장이 불황을 딛고 다시 반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2024 파리올림픽’과 ‘UEFA 유로 2024’를 계기로 전 세계 TV 출하량은 전년 대비 0.2% 소폭 성장한 1억97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내수 시장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의 공세가 내년에 더욱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TV 시장의 회복 국면에서 중국 기업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존 중저가 제품군을 넘어 프리미엄 제품군에서도 적극 추격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로 TCL은 지난해 90인치 이상 초대형 TV 출시하는 등 프리미엄 제품군에 속하는 대형 TV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하이센스 역시 연초 미국 가전전시회 ‘CES 2023’에서 프리미엄 라인업인 미니 발광다이오드(LED) TV를 65형부터 85형까지 배치하고, 110형 8K 라인업까지 소개하며 대화면·고화질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