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새 청소년 건설 근로자 급증
외국인 근로자 中서 베트남으로
정년퇴직 노년층도 일 찾아 기웃
#1. 김모(20) 씨는 수능을 치른 직후인 지난해 겨울, 건설 현장에 첫발을 들였다. 이듬해부터 부담할 등록금과 자취생활에 필요한 월세 등을 벌기 위해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부모에게 더는 손을 벌리지 않겠다는 다짐이 컸다. 일당이 10만원을 웃돌아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보다 소득이 많다는 것 역시 매력적인 요인이었다. 이후 김씨는 방학이면 각 지역 건설현장소장이 인력을 구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일감을 찾는다.
#2. 10일 찾은 수도권의 한 400세대 규모 아파트 건설 현장. 현장 곳곳에 부착된 비상대피로와 화장실 안내표지판에 중국어와 베트남어가 병기돼 있었다. 알루미늄 거푸집 제작작업을 하고 있던 인력 6명 중 2명이 베트남인, 나머지는 한국인이었다. 현장소장 A씨는 “반장을 포함한 철근팀 8명 전부가 베트남인 팀도 있다”며 “현장에 중국인이 줄고 베트남인이 늘면서 최근에는 베트남 기능공까지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5면
한편 새벽마다 300여명의 인부가 모여 일감을 찾는 서울 남구로역 인력시장. 이날 새벽 4시께 빽빽하게 모여든 인부 사이, 10명 중 한 명꼴로 나이 지긋한 노년층도 섞여 있었다. 1시간가량 머물며 인력사무소 호출을 기다린 강모(67) 씨는 몇 년 전 정년퇴직한 이후부터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강씨는 “현장에 나가봐야 자재 나르기 같은 잡부일이 전부”라면서도 “(일감을 받지 못하고) 허탕치는 게 대부분이지만 하루 일당이 필요할 때 가끔씩 나와본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 인력지도가 변화하고 있다. 과거 30·40대 중년층이 주축을 이루고 외국인 인력은 중국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청년층 사이에서 건설 현장에서 고소득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인식이 번지는 추세다.
정년퇴직 후 일자리를 찾으려 건설 현장으로 들어오는 60·70대도 늘었다. 외국인 인력의 경우 일당이 커진 중국인은 현장에서 반장 자리를 주로 맡고, 단순노무직이 동남아시아계 외국인으로 교체되고 있다.
전문가 사이에선 이 같은 변화가 건설업계가 맞닥뜨린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라는 기대도 나온다. 새롭게 유입된 이들을 장기적으로 양성해 건설업계의 만성적인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는 한계점을 느낀다. 청년은 건설 일자리를 잠시 일하고 떠날 단기 일자리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동남아시아계 인력은 저임금 일자리에 주로 전전하며 숙련공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14일 헤럴드경제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 산하 건설근로자공제회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의 계약기간 1년 미만 건설업 취업자 연령별·국적별 자료를 분석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는 일용·임시직 건설근로자 대상 퇴직공제금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해당 자료에서는 중년층이 주축이던 건설업계 인력에 새로운 세대가 유입되고 있는 흐름이 나타났다.
우선 신규 취업자 가운데 10대의 비중이 늘었다. 2019년 5.1%(1만9052명)이던 10대 신규 취업자가 8월 기준 8.6%(2만2948명)로 증가한 것이다. 건설 현장에 청년층이 이탈하고 있다는 인식과 반대되는 흐름이다.
실제로 20대 신규 취업자는 같은 기간 16.5%(6만1382명)에서 14.4%(3만8308명)로 소폭 줄어들었으나 오히려 더 어린 연령층의 유입이 늘어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 평택지역의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대개 수능이 끝난 직후 단기 일자리를 찾아온 고등학생”이라며 “힘을 쓸 수 있는 젊은 인력이라 현장에선 선호하는 편”이라고 했다.
60·70대 고령층의 유입 증가세 역시 두드러졌다. 단순히 중장년기 건설업에 종사한 이들이 고령화한 것뿐 아니라 새롭게 건설 현장에 유입된 이들이 늘었다. 이는 청년층 유입과는 다소 다른 양상이라는 게 현장의 이야기다.
정년퇴직 후 정규직 일자리를 찾다 현장에 들어온 경우가 대다수여서다. 이들은 안전사고 등의 우려로 현장에서 거절을 당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다른 일자리 대비 비교적 일당이 많은 건설 현장 일자리가 간절한 저소득층이 많다고 한다. 같은 기간 60대와 70대 신규 취업자는 각각 22.2%(8만2337명)에서 26.2%(6만9843명), 2.8%(1만543명)에서 5.8%(1만5414명)로 늘었다.
외국인 인력은 여전히 중국인이 절반 이상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점차 그 비중이 줄고 그 자리를 베트남인이 채우는 흐름을 보인다. 5년 전 63.1%(13만5749명)였던 중국인이 55.4%(10만7346명)로 줄었다. 반면에 베트남인이 2.7%(5836명)에서 1만262명(5.3%)으로 늘어나고 있다.
정작 현장에선 이 같은 신규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청년층 유입이 늘었지만 이들 대부분은 숙련공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단기간 머물다 떠난다는 점에서다. 현재 건설업계에선 인력고령화에 더해 국내 현장에 익숙했던 중국인 대신 현장 사정을 잘 모르는 베트남인 인력이 늘었다.
청년 인력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로 꼽힌다. 신영철 건설경제연구소장은 “비숙련공인 20대 이하 인력은 임금이 낮은 터라 단순노무직으로만 젊은 인력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여전히 현장에선 청년층은 중장기으로 양성할 인력보다는 인건비를 감소할 수단으로만 쓰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혜원·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