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은행, 정부 압박에 ‘점포 폐쇄’ 멈췄지만
최근 5년새 매년 100~200개 점포 줄여
소비자 불편 이어지며 ‘대안책’ 실효성 논란
‘특화점포’ 수도권 집중…지방 소외는 계속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그간 빠른 속도로 점포를 줄여오던 주요 시중은행들이 올 하반기에는 영업점 통폐합 계획을 잡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은행권에 대한 ‘상생’ 압박을 가속한 영향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이미 많은 영업점이 문을 닫은 탓에 소비자들의 불편은 계속되고 있다. 은행들은 특화점포 등 각종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이 또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여타 지역을 소외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4대 은행, 정부 ‘눈치’에 점포 폐쇄 멈춰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이 올 하반기 내놓은 영업점 통폐합 계획은 ‘0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은행들은 지점 통폐합 3개월 이전에 관련 사실을 공지해야 한다. 그러나 4대 은행은 7월 이후 관련 공지를 하지 않았다. 적어도 올해까지는 더 이상의 점포 폐쇄가 없을 거라는 얘기다.
하반기 들어 실제 통폐합이 실행된 영업점도 2곳에 불과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7월 3일 서울 주요 도심에 위치한 출장소 2곳을 인근 지점과 통합했다. 이는 지난 몇 년간의 추세와 대비되는 흐름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4대 은행의 올 상반기 말 기준 점포 수는 2818개다. 지난해 말(2884개)과 비교했을 때 올 상반기에만 최소 65곳의 영업점이 문을 닫은 셈이다.
은행들이 점포 폐쇄를 멈춘 주요인은 정부의 압박이다. 올 초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 은행의 ‘이자장사’를 비판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졌다. 실제 금융당국은 지난 5월 은행권 제도개선의 일환으로 점포 폐쇄를 결정하기 전 실시하는 사전영향평가 항목을 강화하고, 대체수단 기준을 높였다. 이후 은행들은 점포 축소 계획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은행 때리기’가 시작되며, 점포 폐쇄에 대한 압박도 다시 가해지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6일 “어려운 시기 금융소외계층의 접근성이 제고돼야 한다고 했는데도, 2020년 이후 600개 가까운 은행 점포가 사라졌다”며 “올해 상반기만 해도 국민은행에서 60개가 넘는 점포를 폐쇄했다”고 비판했다. 은행들이 수익성에 치우친 영업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은행들이 눈치를 살피며 점포 폐쇄를 꺼리는 데다 특화점포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소 당황스럽다”며 “향후 디지털화가 더 진행될수록 축소 필요성이 커질 텐데, 비용과 효율성 부담을 그대로 안고 갈 수는 없지 않나”고 말했다.
대안책 내놓은 4대 은행…지방 소외되며 ‘실효성’ 논란
그러나 은행들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4대 은행은 2018년 이후 매년 평균 100~200개 이상의 점포를 줄여왔다. 지난 2018년 6월부터 올 상반기까지 줄어든 점포 수만 총 753개(21%)에 달한다. 영업점 수만 4000곳이 넘었던 지난 2010년 전후와 비교하면, 1000개 이상 줄어든 숫자다. 이미 빠른 속도로 점포 수를 줄여놓고, 보여주기식 대안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주요 은행들은 고령층 등 취약계층 편의성 감소의 대안으로 ‘특화점포’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수도권 지역에 개설이 집중되며, 금융 취약계층 비중이 높은 지방이 되레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은행은 지난해부터 노인복지센터를 매주 1회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KB시니어라운지’를 운영 중이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현재 서울 내 5개 자치구에 머물러 있다. 우리은행도 지난해부터 고령층 특화점포인 ‘시니어플러스 영업점’을 3곳 오픈했지만, 모두 서울에 집중됐다. 신한은행의 ‘고객중심 점포’ 6곳 또한 서울을 거점으로 하고 있다.
아울러 지방 소외 현상의 대안으로 내놓은 우체국과의 업무 제휴 또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4대 시중은행은 지난해 11월 우정사업본부와 제휴해 전국 모든 우체국 창구에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가능한 업무 영역이 입출금, 통장정리 등 기본 업무에 그치며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두 은행이 한 공간에 점포를 개설해, 점포 폐쇄의 부작용을 최소화한 ‘공동점포’ 역시 국내 5곳에 불과해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직 시작 단계에 있는 특화점포 등 대안을 섣불리 지방으로 넓히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현재 시도들이 좋은 호응을 이끌어 낸다면 지역 소비자들의 편의성을 증진할 수 있는 더 구체적인 대안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