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가, 출고가 100원 오르면 술값 1000원 인상
마진도 병당 62%→68.3%→72.9%로 증가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카스 맥주 도매가가 1박스(500㎖·20병) 당 4000원이 올랐어요. 병당 6000원에 팔던 카스 맥주 판매가를 올해 안에는 7000원으로 올려야 할 것 같아요. 고민이 정말 많습니다.”
서울 강남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해성(38) 씨는 가게 입구 한켠 구석에 쌓아둔 맥주 박스를 쳐다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는 맥주 출고가 인상 직전에 재고를 비축하기 위해 추가 발주를 넣었지만, 주류업체로부터 ‘연휴가 길어서 상품이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호소했다. 이씨는 “병맥주는 그렇다 쳐도, (이번 인상으로) 카스 생맥주(20ℓ) 도매가는 무려 1만4000원이 한 번에 뛴다”며 “인건비부터 전기·가스비까지 다 오르니 술값을 안 올릴 수가 없다”라고 토로했다.
‘맥주업계 1위’ 오비맥주가 11일부터 카스,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가를 평균 6.9% 올렸다. 오비맥주의 국산 맥주 제품 가격 인상은 지난해 3월 이후 19개월 만이다. 재룟값과 물류비 상승 등으로 불가피하게 가격을 조정했다고 오비맥주는 설명했다.
정부는 가격 인상 자제를 압박하고 있지만, 병당 5000~6000원인 음식점 맥주 가격은 더 비싸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장 출고가가 100원 오를 때 식당은 술값을 통상 1000원 단위로 올리고 있기 때문에, ‘병당 6000~7000원 시대’는 더욱 보편화될 것으로 추측된다. 서울 마포구에서 7년간 치킨집을 운영 중인 박모(54) 씨는 “공덕 상권 내에서 누가 가격을 먼저 올릴지 눈치 싸움이 시작된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역·상권·매장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헤럴드경제가 서울 소재 시중 음식점과 주류업계를 통해 취합한 가격을 역산하면, 가격 인상 전 음식점 마진은 맥주 한 병에 5000원일 때 66%, 6000원일 때 71.7%다.
그런데 이번 오비맥주의 출고가 인상으로 음식점 마진은 맥주 한 병에 5000원일 때 62%, 6000원일 때 68.3%, 7000원일 때 72.9%로 바뀌게 된다. 식당 주인이 통상 술값 마진을 70%선에서 책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 인상 요인이 다분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정부의 ‘술값 잡기’ 노력에도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주류 가격 상승세는 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류 도매업계를 대상으로 담합 의혹 조사에 착수했지만, 술값을 올려 인건비·임대료를 비롯한 전기·가스요금 상승을 벌충하려는 식당 주인들까지 이권 카르텔로 매도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주류업체 관계자는 “공장 출고가가 100원가량 오를 때 식당 술값이 1000원 단위로 오르는 건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다”라며 “식당 주인이 결정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달 기준으로 외식용 맥주와 소주 물가 상승률은 1년 전보다 각각 4.4% 올랐다.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3.7%)을 웃돈다. 외식 맥주와 외식 소주의 소비자물가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9월까지 1년 4개월 연속으로 전년 같은 달에 비해 상승했다.
한편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 등 다른 주류업체들은 현재 제품 가격 인상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재료비, 물류비 등 가격 인상 요인이 있는 만큼 추후 가격 이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올해 4월에는 소주 원료인 주정(에탄올) 값이 평균 9.8% 올랐으나 참이슬, 처음처럼 등 소주 가격은 반년째 동결돼 업계의 원가 부담이 이어지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