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소비 진작책만 ‘찔끔’
대규모 인프라 투자 기대감 커지지만
2008년 경기부양 이후 공공부채 급증
“中 새 경제팀, 정책적 수단 거의 없어”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코로나 엔데믹 이후 기대했던 중국의 소비 회복이 지지부진하며 오히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쯤되면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4조위안(약 725조원) 규모의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지 않겠느냐고 시장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거와 상황이 다르다고 보고 있다. 이미 위험 수준인 중국의 공공부채를 감안하면 본격적인 경기 부양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 3월 이후 넉달 연속 전년 대비 0%대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생산자 물가지수는 9개월 연속 하락폭이 커지고 있다.
물가가 낮아지는데도 소비는 여전히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소매판매는 3.1% 느는 데 그쳐 시장예상치(3.2~3.5%)를 하회했다. 민간투자는 5월(-0.1%)과 6월(-0.2%) 두달 연속 감소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지 않으니 기업들 투자도 줄어든 것이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는 “1990년대 일본의 경험에 비춰볼 때 중국이 유동성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며 “이는 통화정책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소비자들이 현금을 소비하지 않는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경제 회복의 키를 쥐고 있는 소비 진작을 위해 연이어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31일 중국 국무원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유급휴가제 전면 시행과 탄력근무제 활성화, 지역 관광지 비수기 무료 개방 등을 포함한 소비 진작책 20개 조치를 확정해 각 지방 정부와 자치구에 하달했다.
지난 4일에는 공안부가 인구 300만 이하 도시에서는 후커우(호적)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정착할 수 있도록 조건을 완화한다고 밝혔다. 중국에서는 해당 지역의 후커우가 있어야 주거나 의료, 자녀 교육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완화로 저소득 농촌 거주자들의 도시 이주가 자유로워지면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중국 당국의 기대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국 정부가 내놓은 경기 부양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 주식에 대한 투자 의견을 비중확대에서 비중 유지로 하향조정하면서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가 경기 회복과 민간 부문 성장을 위한 지원책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부양책이 띄엄띄엄 나오고 있고 주가 상승을 지탱하기엔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시장은 지난 2008년 중국 정부가 내놓은 4조위안 규모의 재정 패키지와 같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기대하는 눈치다. 당시 경기 부양책은 ▷대규모 주택 사업 ▷농촌 기반 시설 조성▷철로, 도로와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SOC) 건설 ▷기본 의료 서비스 체계 건설 등 인프라 구축을 중심 내용으로 했다.
당시 경기부양책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9년 하반기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9% 이상으로 뛰어올랐고 중국의 국내외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중국 정부가 당시처럼 대규모로 경기 부양책을 내놓기는 어렵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역설적으로 중국 정부의 발목을 잡은 것은 2008년 당시 경기부양책으로 생긴 막대한 공공부채다. 당시 인프라 프로젝트가 전례없는 신용 확대와 지방 정부 부채의 증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중국 중앙은행에서 근무했던 주민 전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는 “중국이 이미 높은 부채 수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다시 대규모 부양책을 발표할 가능성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지방 정부의 부채규모는 약 40조 위안으로 중국 국내총생산의 32%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19조위안 늘어난 수치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하면서 경제 활동을 통제한 데다 부동산 경기가 냉각되면서 지방정부의 돈줄이 말랐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융자기구(LGFV)를 통해 부동산 등 자산을 담보로 지방정부가 빌린 숨겨진 부채를 합할 경우 GDP 대비 53%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씨티그룹은 중국의 전체 공공부채가 이미 GDP의 90%에 해당하는 108조 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에레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그동안 커진 중국 경제의 규모를 감안할 때 인프라 주도의 부양책이 2008년과 동일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 규모가 훨씬 커야 할 것”이라며 “그러한 조치를 취한다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민주주의 수호 재단의 크레이그 싱글턴 중국 선임 연구원은 “중국의 새로운 경제팀은 성장을 의미있게 되살릴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이 거의 없다”면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경제 관리가 중국의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더 광범위한 시스템 위기가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