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cm 식칼 2자루 들고 대로변 배회, '무죄'

20cm 과도 들고 위협,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현행 경범죄처벌법, 흉기 소지해도 ‘벌금 10만원’

흉기 휴대해도 고작 벌금 10만원, 재판가도 ‘무죄’ 된다니[세모금]
4명의 사상자를 낸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조선이 28일 오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지영·김빛나 기자] 신림동 흉기난동 피의자 조선(33)씨가 송치되면서 흉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행위 자체에도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현행법 상 흉기를 소지한 게 발각되면, 경범죄처벌법에 의해 10만원 이하의 벌금만 부과된다. 이에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20년 대전 중구에서 흉기를 소지하고 대로변을 돌아다니며 범행대상을 물색한 A씨는 1심에서 무죄를 받은 바 있다. A씨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 집에 있던 28㎝ 식칼 2자루를 점퍼 주머니에 넣은 채 바깥으로 나와 인근을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찾았다. A씨는 경찰서를 방문해 “식칼로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면서 “돌아다니면 사람을 죽일 것 같다. 구속해달라”며 자수했다.

2021년 B씨는 강원 속초시에 있는 한 길거리에서 일면식 없는 피해자를 2분 가량 쫓아다니다 별다른 이유없이 소지하고 있던 20㎝ 과도를 점퍼에서 꺼내 피해자를 향해 겨누며 다가갔다. 일면식도 없는 행인을 향해 흉기를 들고 위협한 것이다.

A씨와 B씨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검찰은 A씨를 살인예비죄로 기소했지만, 재판부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교도소에 가고자 허위로 자수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살인을 실행할 목적을 가지고 살인죄 실현에 기여할 수 있는 행위로까지 나아갔다고 보긴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특수협박죄로 B씨를 기소했는데 재판부는 “이른바 묻지마 범행으로 볼 수 있지만, 과도를 피해자를 향해 휘두르거나 찌르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 피해자가 범행 후 조현병으로 입원해 6개월 치료를 받은 것에 비추어봤을 때 곧바로 엄벌에 처하는 것보다는 치료와 관찰이 필요하다고 보인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흉기를 들고 설치는데도 다친사람이 없어 실형이 나오지 않은 이런 처벌은 적절했던 걸까. 문제는 이런 사건들이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흉기 휴대해도 고작 벌금 10만원, 재판가도 ‘무죄’ 된다니[세모금]
제기동에서 흉기를 들고 식당 주인과 시민을 위협한 6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유튜브]

신림동 흉기 난동 이후 흉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신고는 이어지고 있다. 27일 경기도 하남시에서는 아파트 근처에서 흉기를 소지한 60대 남성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남성이 텃밭에 들어오는 고라니를 잡기 위해 흉기를 소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남성에게 경범죄처벌법상 흉기 은닉·휴대 혐의를 적용해 조사 중이다.

20일 제기동 전통시장에선 술값을 내지 않겠다며 난동을 부리다 39㎝짜리 칼을 들고 식당 주인과 시민을 위협한 6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경찰은 특수협박 및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국민의 법감정에선 현재의 처벌 수위는 낮아 보인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경범죄처벌법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에 따르면, 흉기를 은닉하거나 휴대할 경우 1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도 “흉기 소지는 특수 협박이나 특수상해, 나아가 살인 같은 강력 범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타인에게 공포심을 주는 행위기 때문에 경범죄 처벌법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흉기 소지에 대해서는 철저한 발견 노력, 소지자에 대해서는 처벌을 좀 더 강화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면서 “시민 불안이나 자주, 빈번하게 유사한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처벌 수위를 심각하게 고민 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흉기 휴대해도 고작 벌금 10만원, 재판가도 ‘무죄’ 된다니[세모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