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전 CB 일부 원리금 중도상환
매각후 잔여물량 보통주로 전환
3자 배정증자로 새 주인 영입후
산은·해진공 2대주주로만 남고
증자대금으로 자사주매입·소각
추후 정책자금 추가회수 노릴수
HMM은 부실화된 현대상선을 산업은행 등이 자금지원을 해 되살린 후 이름을 바꾼 회사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 대란을 겪는 과정에서 초우량기업으로 거듭났다. 뜨겁던 업황이 다소 식었지만 실적은 여전히 괜찮은 편이다. 국내 유일의 국적 해운사라는 가치도 상당하다.
산은이 이달 중 HMM 매각공고를 낼 듯하다. 보기 드문 대형 인수합병(M&A)이다. 지배구조가 독특해 난이도가 꽤 높아 보이지만 방법이 없지는 않다. 앞선 대우조선해양의 사례를 참고할만하다.
산은은 대우조선 인수후보자로 한화그룹을 택한 후 보유지분을 파는 대신 신주를 발행해 최대주주 지위에 오르도록 했다. 산은이 지분매각으로 돈을 챙기기 보다는 한화가 낸 증자대금으로 대우조선의 약점인 부실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HMM의 약점은 재무구조가 아니라 지배구조다.
회생 과정에서 대규모로 발행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사채(BW)로 인해 이미 발행된 주식보다 향후 발행될 수 있는 물량이 더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새 주인을 찾기 어렵다.
HMM의 성공적 매각을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올해 정부의 세수 부족이 심각하다. 제공된 정책금융은 최대한 수익을 거두고 회수될 필요가 있다. 든든한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기존 일반 주주들의 피해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산은과 해양진흥공사, 신용보증기금이 가진 지분은 2억2332만주로 보통주 지분률은 45.66%다. 시가로 4조원에 달한다. HMM은 지난해 10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거뒀다. 비싸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산은과 해진공이 가진 2조6800억원 규모의 CB와 BW다. 모두 주당 5000원에 보통주로 전환될 권리가 붙어있는 초장기채, 즉 영구채다. 이자율은 연 3%다. 발행 후 5년 후부터 HMM은 중도상환을 할 수 있다. 상환 가능물량은 올해 10월 1조원, 내년 9600억원, 2025년 7200억원이다.
CB와 BW가 보통주로 모두 전환된다면 모두 5억3600만주로 시가로 10조원에 육박한다. 아무리 HMM이 돈을 잘 번다고 해도 14조원이라는 값을 치르고 인수할 곳은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산은 등의 투자회수는 극대화하면서 새 주인의 자금부담은 최소화하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① 매각전 CB일부 중도상환
산은의 목표는 연내 매각이다. 당장 올 10월부터 중도상환이 가능해지는 CB 1조원은 원리금을 현금으로 갚으면 된다. 주식으로 전환하면 가치가 더 크겠지만 주식발행 물량이 늘어나 HMM 주주들에게는 부담이다. 최대주주인 채무자와 채권자가 동일한 상황에서는 특혜 시비 가능성이 낮아진다.
잠재발행 물량 축소가 주가에 호재가 될 수도 있다. 현재 운수업 빅3인 대한항공, HMM, 현대글로비스의 주당순자산가치(PBR)는 각각 1배, 0.4배, 1배 가량이다. HMM의 CB와 BW이 보통주로 전환된 것을 가정하면 주당순자산(BPS)가 낮아져 PBR은 0.91배로 높아진다. 시장은 이미 CB와 BW가 보통주로 바뀔 것까지 주가에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1조원 가량의 중도 상환이 이뤄진다면 시장은 이 역시 주가에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② 인수후보 결정…CB·BW 주식전환
다음으로 HMM의 새로운 대주주가 될 곳을 결정한다. 산은 등이 보유한 보통주 지분보다 CB와 BW의 잠재발행 물량이 더 많다. 산은 등이 보유한 지분을 파는 것보다는 CB와 BW를 파는 게 낫다. 채권형태로 팔면 2조원이 채 안된다. 주식으로 바꾸면 6조원이 넘을 지분을 2조원에 팔 수는 없다. 국민의 돈으로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HMM을 도왔는데 충분한 수익을 거두지 못한다면 배임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공정함을 위해서는 주식으로 전환한 후에 팔아야 한다.
③새 대주주 상대로 제3자 배정 증자 후 CB·BW 전환물량 자사주 매입·소각
새 대주주가 주식으로 전환된 물량을 매입할 수도 있지만 제3자배정을 활용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새 주인 입장에서는 산은과 해진공, 신보 보다 많은 의결권(보통주)만 가지면 된다. 새 대주주가 제3자 배정으로 신주를 인수하면 HMM이 그 대금으로 CB와 BW의 주식전환물량을 자사주 매입형태로 사들여 소각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새 주인은 최대주주가 되고, 산은 등은 기존 보통주 지분율을 유지해 2대주주가 된다.
이렇게 되면 새 주인은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가 가능하고, 일반주주들은 잠재발행주식이 해소돼 주가 희석 우려를 덜 수 있다. 향후 HMM이 창출할 이익으로 2대주주 보유주식을 천천히 사들여 소각한다면 이들 산은과 해진공에게도 남는 장사다. 당장 올해에만 5조원 이상을 확보하고 추후 HMM 경영성과에 따라 추가로 수익을 낼 기회를 갖게 된다.
산은이 어떤 방식으로 HMM 매각을 진행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사는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팔려고 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무리한 인수는 자칫 승자의 저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파는 쪽과 사는 쪽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묘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