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무대 서는 이랑 · 모어
8월 ‘왜 내가 너의 친구라고...’ 공연
시·노래·춤·드랙이 어우러진 낭독극
“ ‘나’는 특별한 존재도, 이상한 존재도
무서운 존재도 아니다” 담담한 독백
한눈에 반했다. 첫 만남은 2013년 홍대 롤링홀 대기실. 극E(외향)형의 무채색 인간과 극I(내향)형의 총천연색 인간은 서로를 알아봤다. 이랑은 “너무 끌리는 사람이 앉아있었다”고 떠올렸다. 모어는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프리다 칼로 분장을 하고 무심히 앉아있던 드랙 아티스트에게 이랑은 직진했다.
“그 때 말 걸기를 잘했죠. 삶과 예술, 우정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았으니까요.” (이랑)
무언(無言)의 순간에도 마음은 통한다. 오가는 눈빛이 없어도, 온 존재를 품는다.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듣는 찰떡궁합, 혹은 천생연분.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두 사람이 일을 벌였다. 노래를 만들고 글도 쓰고 영화도 찍는 ‘발언하는 예술가’ 이랑(37)과 ‘발레리나’이자 ‘드랙(Drag·생물학적 성별에서 벗어난 겉모습으로 꾸미는 행위) 아티스트’이며 글도 쓰고 연기도 하는 모어(모지민·45)다.
▶ “무섭지도 이상하지도 않은 나”...드라마틱한 낭독극= ‘불온한’ 두 예술가가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심장 한가운데로 입성했다. 세종문화회관의 여름 축제인 ‘싱크넥스트 23’에 선정돼서다. 지난 한 해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곡으로 검열 논란에 시달린 이랑, 세상이 정한 규정을 뛰어넘는 모어에게 세종문화회관이 협업을 제안했다.
“시청 광장에서 트럭에 올라 노래하다 세종문화회관 안으로 들어오니 감개무량해요. (웃음) 더 근사한 곳으로 향한다기 보단, 다양한 위치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어제는 집회 현장에서 만났지만, 오늘은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아티스트라고 말할 수 있어서요.” (이랑)
두 사람은 ‘왜 내가 너의 친구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8월 8일·세종문화회관 S씨어터)라는 “다소 억하심정처럼 들릴 수 있는 제목”(이랑)의 공연으로 관객과 만난다.
‘공연의 제목’은 모어의 입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지난해 9월 무렵 ‘모어’의 국회 상영회에서다. ‘국회 이벤트’ 준비를 위해 여야 모든 의원에게 초청장을 보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참석자는 사회를 본 장혜영 정의당 의원 뿐이었다. 이랑은 “의원들과 대면해 당사자가 직접 차별금지법과 성 소수자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그 때 좀 슬프고 통탄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모어가 남긴 말이 제목이 됐다. “왜 내가 너의 친구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 대체 언제까지 나의 존재를 부정할 것인가. 나는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너의 옆집에 살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모어는 “사정 없이 머리를 굴리다 방언이 터졌다”고 했다.
그들은 공연에서 “ ‘나’는 특별한 존재도, 이상한 존재도, 무서운 존재도 아니다”고 말한다. 평생 들어온 ‘무섭고 이상하다’는 편견 앞에 선 두 사람의 담백한 독백이다. “노래하고 드랙을 하고 춤을 추는 무대”만 있는 건 아니다. 꿋꿋하게 견뎌온 지난 삶과 일상의 편린이 담긴다. “화려함 뒤에서 먹고 쉬고 나른하게 앉아있는 사람, 어떻게 보면 외로운 사람, 혼자 일상과 싸우는 모어라는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이랑)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이랑 뒤에 숨은 ‘연약한 한 사람’의 모습도 담긴다. 인간 이랑, 인간 모지민의 이야기다.
공연은 두 사람이 탁구처럼 주고받는 ‘드라마틱한 낭독극’ 형식이다. 모어가 지난 1년 사이 일기처럼 쓴 글들이 대본이 됐다. A4 90페이지 분량이다. ‘일과 일상, 예술, 외로움과 버림받음’이 주제다. 이랑은 이 무대를 위해 공연과 같은 제목의 신곡도 작업 중이다.
▶닮은 듯 다른 이랑과 모어의 예술...우리 만남은 역작=두 사람은 닮았지만 다르다. ‘직설의 언어’로 옮기는 이랑의 사회는 “다소 우울하고”(이랑), ‘인고의 시간’을 딛고 덧칠한 모어의 세계는 “밝고 건강하고 아름답다.” (이랑)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 ‘발레리노’가 아닌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모어. “ ‘폭력의 역사’ 속에서 보낸 무용수의 꿈은 이태원 환락가에서 외로운 둥지를 텄다. 그것이 옳고 그른지도 모른 채로, 얼굴 화장은 두터워졌다”고 그는 말한다. 편견의 굴레에 갇혀 ‘되고 싶은 나’를 놓은 채 숨어버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드랙과 발레를 혼합, “낯설고 이질적이고 모호한 장르를 개척”(모어)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절망의 구렁텅이 안에서도 희망이 도사린다는 거예요. 부정을 이야기할 때도 희망과 아름다움이 있으니, 끝내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거죠. 하염없이 아름다움의 도가니탕에서 살고, 관 속에서도 끼 떨면서 사는 거예요.” (모어)
‘밥벌이’로 음악을 시작한 이랑은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과 치열한 일상의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담담한 그의 노래는 힘이 세다. 누군가는 ‘정치적’이라 한다. 기타 코드에 얹은 멜로디는 대체로 잔잔한 슬픔이 일렁인다. 이랑에게 예술은 그가 걸어온 길 위에 있다. 고단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면서도 사회적 존재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 ‘고단함의 굴레’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운 동시에 고단하고, 그것으로 다시 고단함을 씻을 수 있는 위로를 주고 공감하는 시간을 주는 이 일을 좋아해요.” (이랑)
수없이 많은 무대에 섰지만, 모어는 “이제야 무대가 두렵지 않다”고 했다. 자신감도 생겼다. 그는 “이전까진 욕창 속의 구더기 같은 삶을 살았다면, 이젠 삶이 치열하고 힘들더라도 아름답게 살다 가고 싶다”고 했다.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애쓰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아름답다는 걸요. 전엔 불안하고 불편했다면, 지금은 다음 무대가 기대돼요. 이런 제가 좀 역겹죠. 너무 당당해서.(웃음)” 모어의 이야기를 듣던 이랑은 “고군분투하고 힘들어하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당당함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둘이 있을 땐 “대한민국에 이런 아티스트가 있어 감사한 줄 알아야 한다”고 농담 섞인 진담도 한다.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해 잘 먹고 잘 사는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스스로의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어요. 프론티어로서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마음도 있고요.” (이랑) 모어는 ‘한 단어’로 정리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마스터피스’가 될 거라 했다. “애쓰지 않아도,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역작이 나올 거예요. (웃음)” (모어)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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