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이어 크레디트스위스(CS)까지 위기에 휩싸이면서, 채권 시장이 경기 하강 위험을 적극 반영하기 시작했다. 국채 금리는 기준금리 3.50%를 밑도는 ‘금리 역전’ 현상을 보이며 통화정책과의 괴리를 보이고 있다. 금융시스템 불확실성이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할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강해지면서, 통화당국의 긴축 강도가 누그러질 수 밖에 없다는 예상이 시장에 반영된 때문이다.
SVB사태 후…전구간 국고채, 기준금리보다 낮아져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시중 금리의 지표가 되는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0일 현재 3.264%로 한은의 기준금리 3.50%를 밑돌았다.
국고채 3년물을 비롯해 국고채 1년물(3.296%), 2년물(3.350%), 5년물(3.257%), 10년물(3.304%), 20년물(3.316%), 30년물(3.291%), 50년물(3.260%) 등 전 구간의 국고채가 기준금리에 못 미치는 금리를 기록했다.
이번 금리 역전은 SVB 파산에서 촉발됐다. 국고채 2년물 이상 금리는 SVB 파산 소식이 전해진 13일 이후 20일까지 6거래일 연속 기준금리를 하회하고 있고, 1년물 금리도 14일부터 기준금리 밑으로 떨어졌다.
국채 금리 하락은 시장 유동성이 안전자산으로 몰리며, 채권 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채권금리는 채권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SVB파산 직후인 13일부터 20일까지 투자자들은 국채를 4조4541억원 순매수했다. 외국인이 3조3437억원, 은행이 1조4766억원을 순매수했으며 개인도 4163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연초 이후로 투자자들은 31조9806억원의 국채 순매수를 기록 중이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SVB 사태로 금융 불안정성이 극대화하고, 시스템 리스크 발생 우려에 위험자산 기피 심리가 심화돼 채권 금리가 급락했다”며 “글로벌 불안정성에 연동돼 국고채 금리 또한 급락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채보다 안전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회사채 금리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20일 회사채(3년, AA-) 금리는 기준금리를 웃도는 3.986%를 가리켰다. 13일 이후 국채 3년물 금리는 0.439%포인트(-11.9%) 하락했으나 회사채 3년물 금리는 0.410%포인트(-9.3%) 떨어지는 데 그쳤다.
해당 기간 투자자들의 회사채 순매수 금액 역시 1096억원으로 국채에 비해 훨씬 적은 수준을 기록했다.
연이은 은행 파산 위기…美 FOMC가 시장 불안 가늠대
채권금리가 기준금리와 괴리된 데에는, 금융시장 불안에 따라 통화정책이 적극적인 긴축의 고삐를 놓을 것이란 전망도 앞서 반영됐다.
SVB와 CS사태는 고금리 상황에서 자금의 유입과 유출을 잘못 판단하면서 은행이 무너진 것으로 파악된다. 때문에 금융시스템 불확실성이 커진 이 때, 미국 중앙은행이 기존의 긴축 강도를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미 국채금리도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 국채 3년물 금리는 20일 기준 3.809%, 10년물 금리는 3.483%로 연준의 정책금리(4.50~4.75%)를 밑돌고 있다.
이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를 25bp(1bp=0.01%포인트) 올리는 데 그치거나, 아예 동결할 것이란 기대까지 나오고 있다. 다만,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경우 금융 시스템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인정하는 셈이 되고 시장의 불안을 더 부채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베이비스텝(금리 0.25%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더 크다.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CME FedWatch)에 따르면 20일 현재 연방기금 선물시장에서는 연준이 오는 22일 FOMC에서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할 가능성을 73.8%로 보고 있다.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은 26.2%다.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은 일주일 전(65.0%)보다 높아진 반면, 동결 가능성은 1주 전(35.0%)보다 낮아졌다.
윤소정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주간 재무제표를 보면 중앙은행의 비상 조치들이 안전벨트로서 잘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주 예정된 3월 FOMC에서는 높은 물가와 견고한 고용 시장에 무게가 쏠리면서 25bp 인상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선물시장은 90% 이상의 확률로 7월부터 금리가 인하될 것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같은 기대 역시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금리 인하 기대가 되돌려지며 국채 금리도 다소 상승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 불안이 단번에 해소될 수 없고, 향후 연준과 한은의 긴축정책이 완화될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국채 금리가 빠르게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 금리는 연준의 인상 정책 고수로 상승할 수 있겠으나 머지 않은 인상 종료를 감안하면 반등 장세가 도래하더라도 일시적 상승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기준금리 인상 자체는 금리의 상승 재료지만 점도표와 경제 지표 수정 정도에 따라 상승 강도는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