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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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같은 곳에서 똑같은 걸 샀는데 왜 다르죠?”

나쁜 제품의 시대다. 정확히는 제품의 질이 낮아지고 있다. 한번 사면 십 년은 거뜬히 입고 썼던 시대는 지났다. 스마트폰은 2년만 지나면 말을 듣지 않고, 옷은 금방 해지며, 각종 기기도 금방 망가져 자꾸만 다시 사야하는 것이 오늘날의 ‘소비’다.

평소 쓰던 것과 같은 상품을 구입했다가 왠지 품질이 안 좋아진 것 같다면, 그 불안한 느낌은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국의 인터넷매체 복스(vox)는 ‘물건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당신이 사는 모든 것은 나빠지고 있다’라는 기사를 잇따라 내며 왜 오늘날 우리는 곧 망가지는 상품을 자꾸만 소비하고 있는지, 도대체 왜 상품의 품질이 갈수록 안좋아지고 있는지를 조명했다.

‘구관이 명관’…“오래된 제품을 더 오래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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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쓴 리지 라즈메르는 “10년 간 착용했던 브래지어가 망가져 새 제품을 주문했는데, 세탁을 몇 번하자 여지없이 망가져 버렸다”면서 “같은 상품인데 몇 년새 품질이 나빠져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라즈메르의 사례와 같은 상품의 품질 하락과 수명 단축은 사실상 전 상품군에서 나타나고 있다. 매일 입는 옷에서부터 가전과 자동차 등을 모두 아우른다. 왜 생산자들은 같은 상품을 더 안좋게 만들까에 대한 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소비자다.

복스는 “문제는 바로 우리(소비자)다”면서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구입하려하고, 이를 따라가기 위해 많은 회사들은 가능한 빠르면서 저렴한 방식으로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거 상품을 생산할 때는 외관, 기능성, 그리고 제조 역량이 균형있게 고려됐다면, 오늘날은 제조 역량이 가장 우선순위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 소비자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물건을 더 자주산다. 지난 2021년 UN이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약 응답자의 40%가 한달에 적어도 한번 이상 옷을 산다고 말했다.

가격 탄력성 역시 상품의 질을 떨어트리는 원인이다. 수요를 생각했을 때 생산자들은 인플레이션과 인건비 상승으로 생산비용이 오르더라도 가격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밖에 없는데, 이 경우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값싼 부품이나 값싼 재료를 쓰는 것이다. 한 의류 전문가는 “사람들은 모든 것에 대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 “비용이 올라도 고객들이 같은 가격을 지불하길 원한다면, 가장 먼저 변해야 하는 것은 품질이다”고 밝혔다.

“오래 쓰는 것=좋은 것?” 고쳐쓸 권리, 수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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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상품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가령 휴대폰을 예로든다면 누군가에겐 20년 넘게 쓸 수 있는 것이 좋은 상품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고성능 카메라가 달린 최신 휴대폰이 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소비자들이 더 많은 물건을 더 자주 사고 있다는 사실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것이 좋다’는 인식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체는 이 같은 인식을 만든 것이 바로 기업들이라고 지적했다.

복스는 “기업들은 상품이 잘 망가지도록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사고방식이 더 나은 물건을 지향하도록 바꾸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면서 “기업의 입장에서 오래 쓸 수 있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고 전했다. 특히 대공황 이후 경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소비를 장려하는 과정에서, 당시 광고들이 일제히 “오래된 물건은 나쁘다”란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소비의 본질을 변화시킨 주요한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의 연장선에서 최근 몇년 사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수리권’이다. 제품의 수리를 까다롭게 만드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새 상품을 구입을 유도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보증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자가 자유롭게 물건을 고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한다는 것이 수리권의 핵심이다. 이는 주로 전자기기 등 기술 분야에 적용되는데, 출시가 오래된 상품의 부품을 단종시키거나 수리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수리권 침해의 대표적인 예다.

복스는 “끊임없이 구입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기업들은 그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면서 “가뜩이나 상품 수명이 짧아졌는데, 그것을 수리하려고 해도 기술적 장벽이 너무 높다”고 전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자원의 선순환을 추구하는 순환경제의 일환으로서 수리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 뉴욕시의 경우 지난해 고장 난 전자제품에 대한 수리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매튜 버드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스쿨 교수는 “아무도 내게 단추를 꿰맬 수 없다고 말하지도 않고, 실과 바늘을 파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도 없다”면서 “하지만 기술 분야에서는 이러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수준의 통제는 기업의 권한 밖이다”고 강조했다.


balm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