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한통이 7만원, 간신히 버텨

고기반찬은 계란·두부로 대체 잦아

경제 위기에 시민들 후원도 급감

22일 오전 8시40분,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에서 사람들이 배식을 받고 있다. 박혜원 기자
22일 오전 8시40분,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에서 사람들이 배식을 받고 있다. 박혜원 기자

“모자랄 것 같은데...”

기온이 영하 8도까지 떨어진 22일 오전 8시 45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의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운영을 총괄하는 자광명 보살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배급이 시작된지 불과 5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한 사람 당 도시락 하나씩, 때로는 “식구들과 먹게 3개 달라”는 요청을 들어주며 이날 무료 배급은 순식간에 종료됐다.

이날 원각사 무료급식소가 준비한 물량은 180명분, 메뉴는 주먹밥과 된장국이었다. 무료급식소 앞에선 배급이 시작되기 전 8시 20분부터 패딩과 귀마개, 목도리 등으로 무장한 80여 명의 사람들이 탑골공원 담장을 따라 50m 가량 줄을 늘어섰다.

배급을 받은 이들은 담장에 앉거나, 아직 영업 전인 상가 천막 아래에 서서 아침 끼니를 해결했다. 매일 이곳에 오고 있다는 김순옥(61)씨는 “웬만하면 사 먹으려고도 하지만, 아무리 간단하게 때우려고 해도 적잖이 부담이 된다”며 “저녁엔 저녁 무료급식을 하는 곳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자광명 보살은 “기름값이고 식자재값이고 하나같이 너무 많이 올랐다”며 “오후엔 동지라 팥죽을 준비했는데 못 드시고 가는 분들이 없게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3만원 정도 하던 18ℓ 기름 한 통이 요즘 7만원까지 올라서 가장 부담된다”고 말했다.

고물가 위기가 취약계층의 식사 풍경도 바꾸고있다. 우리 사회 가장 밑단 취약계층의 식사를 책임지던 무료급식소에는 시민들의 후원마저 눈에 띄게 줄면서다. 무료급식소들은 고기 반찬을 줄이거나, 비싼 전기료 때문에 전기히터 후원을 마다하고 연탄보일러로 버티며 겨울을 나고 있다.

경기 화성시에서 ‘만나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며 10년째 취약계층에게 하루 3끼를 제공해온 김성민 목사는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부업’을 시작할지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김 목사는 “조금만 장을 봐도 100만원은 우습게 넘어서 무섭다”며 “신문배달이나 쿠팡 알바를 해야 할까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도 크게 줄었다. 올해 1월엔 일시·정기·기업후원을 합해 1314만원 수준이었으나 지난 9월 들어서는 90만원이 됐다. 지난달엔 81만원으로 조금 더 줄었다. 100만원을 웃돌던 일시후원이 크게 줄어, 지난달엔 12만원에 그쳤다.

다행히 연말에 후원이 몰리면서 이달 후원금은 1000만원대로 회복했지만, 지난해 수준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고 한다. 회원들이 매달 내는 회비까지 합해, 만나무료급식소의 예산은 작년 대비 10월에는 577만원, 11월엔 581만원, 12월엔 827만원이 줄어들었다.

예산은 줄고 물가는 올랐는데 무료급식 수요는 더욱 늘었다. 김 목사는 “못 보던 분들이 요즘 새롭게 많이 찾아오고 있다”며 “혼자 급식소를 찾길 꺼리던 분들도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많이 오는 것 같다”고 했다.

김 목사는 결국 허리띠를 졸라맸다. 작년 이맘때쯤 소불고기, 훈제오리, 찜닭 등으로 꾸렸던 식단은 올해 계란이나 두부로 대체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마저도 물량이 모자란다. 매일 5명 정도는 급식을 먹지 못하고, 컵라면이나 빵을 받아간다.

최근엔 후원자가 급식소에 기부하겠다는 전기 히터를 마다하기도 했다. 전기료 부담 때문이다. 대신 연탄보일러를 유지하고 있다. 김씨는 “하루 세 번 연탄을 갈아야 하는 수고가 있지만 치솟는 전기세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했다.

다른 무료급식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천에서 매일 100여명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노숙인 시설 ‘광명의집’에도 올해 들어 후원이 뚝 끊겼다. 광명의집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식자재값도 식자재값이지만, 트럭을 끌고 다니며 무료급식을 준비하다보니 기름값도 만만찮다”며 “식자재는 기부를 받을 수 있다고 해도, 기름값으로 바로 써야하는 현금 후원이 올해 좀처럼 들어오지 않아 부담”이라고 말했다.

박혜원 기자


k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