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세종문화회관 월드투어 마침표
코로나 시대에 완성한 치유의 음악여정
“재즈가 뭔지도 모르던” 27세에 시작
천천히 오래 걸어 도달한 지금의 길
소리에 대한 끝없는 연구과 실험
자신의 목소리 고스란히 살린 발성
독창적인 음악성으로 세계 최고 칭송
“늙지 않는 음악 재즈,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시도로 새로운 나의 길 갈 것”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나윤선의 목소리에선 음악이 들린다. 노래를 하지 않을 때에도, 그의 말엔 음표가 그려진다. ‘감정의 옷’을 입은 말들이 오선지 위에 살포시 내려 앉아 장조와 단조를 넘나들고, 장르의 경계를 허문다. 담백한 포크, 경쾌한 팝, 시린 발라드에서 멜랑콜리한 재즈로 도달한다. 그의 말은 음악이 되고 그의 음악은 다시 말로 새겨진다.
“오늘날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재즈 싱어는 한국인이며, 그 이름은 나윤선이다.” (프랑스 ‘레 제코(Les Echos)’)
“나윤선을 만나는 모든 것은 다 재즈가 된다. 그녀는 현재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 가수이고,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아티스트 중 한 사람이다. (프랑스 ‘르 피가로(Le Figaro)’)
세계 재즈계엔 이상한 일이 벌어진지 아주 오래 됐다. K팝엔 방탄소년단, K-무비엔 ‘기생충’, K-드라마엔 ‘오징어게임’이 있듯이, 재즈 음악계에도 일찌감치 ‘하나의 역사’가 써졌다.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을 향한 유럽 재즈 본고장의 찬사다.
“제겐 여전히 부담이고, 말이 안 되는 일들이에요. (웃음) 그 평을 보고 사실 쥐구멍에 숨고 싶었어요. 아니,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대체 이게 말이나 되나, 난 아직 멀었는데… 그런 생각을 계속 하게 돼요.” 거대하고 거창한 수사들이 따라다닌지 오래라, 구태여 설명하는 것이 구구절절하다. 그런데도 나윤선은 지금도 쑥스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그는 “굉장히 천천히 오랜 시간을 거쳐 지금에 왔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유럽, 북미로 이어진 월드투어를 진행하고, 한국에서 공연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최근 입국한 나윤선을 만났다. 그는 “전 세계에서 공연하지만, 한국에서의 공연은 언제나 떨린다”고 했다. “어릴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라고 하면 신이 나서 잘하는데, 엄마 아빠 앞에서는 노래하는 것이 힘들잖아요. 내 나라, 내 식구 앞에선 더 떨리더라고요. (웃음)”
이번 월드투어는 지난 1월 워너뮤직을 통해 전 세계에 발매한 11집 음반 ‘워킹 월드’(Walking World)와 동명의 타이틀로 이어지고 있다. 월드투어 55회차 공연은 모두 매진됐다. 오는 14일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부산, 강릉, 논산, 울산에서 마무리된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음악가에게 팬데믹은 ‘상실의 시대’였다. “30~40개의 공연이 취소”됐고, 일 년 중 대다수의 시간은 해외에 머물렀던 그가 “오랜만에 한국의 집으로 돌아온” 시기이기도 했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지만, 무대에 있을 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활동하던 무대가 사라지고, 함께 연주하던 뮤지션들이 멀리 있다 보니 홀로 섬에 떨어진 느낌이 들었어요. 이대로 음악을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때에 만든 음반이 11집이었어요.”
스물일곱 살에 재즈를 시작해 27년의 활동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작업한 앨범이었다. 그는 “한참 공부할 게 많으니, 언감생심 혼자 음반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그에게 이 작업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유튜브를 보면서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방법을 공부”했고, 사진도 셀카로 찍어 음반을 꾸몄다. “본의 아니게 처음으로 혼자 모든 것을 다 해본 앨범이었어요.” 나윤선의 손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음반엔 ‘한 땀 한 땀’ 수작업을 하듯이 써낸 자작곡 11곡이 꽉 채워졌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냉장고에 있는 소박한 재료들로 만들어 맛이 없을 수도 있고 부족할 수 있어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제가 직접 만들었으니 맛있게 잡숴달라고 내놓은 그런 음반이에요. (웃음)” 팬데믹을 보내며 느낀 “진솔한 이야기와 음악” 안에서 매순간 진화해온 그를 만날 수 있다. 이번 공연의 주요 레퍼토리가 될 ‘위로와 치유’의 음악이다.
그는 “재즈가 뭔지도 모르던 때”에 재즈의 길에 접어들었다. 의류회사에서 직장생활도 해봤고, 극단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1994)으로 데뷔해 일찌감치 무대에도 서봤다. “훈련받지 않은 배우”의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선다는 자책은 그를 새로운 ‘배움의 길’로 이끌었다. ‘음악하는 대학 동기’의 권유로 시작한 것이 재즈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대중음악의 원조라고, 재즈를 배우면 다 할 수 있다기에 하게 됐어요. (웃음)”
애초 유전자는 타고 났다. 그의 아버지는 국립합창단을 창단한 지휘자 나영수 씨이고 어머니는 한국 최초 뮤지컬 악단인 예그린 출신의 배우 김미정 씨다. 그의 어머니는 지금도 나윤선에게 최고의 “보컬 선생님”이다. “외국에서 전화 드리면 원격으로 레슨을 해주세요.” 뛰어난 DNA를 가졌지만, 스스로는 “한 번도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재즈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199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학교만 해도 네 군데나 다녔다. “유럽 최초의 재즈 학교가 파리에 있다고 해서 유학을 간 건데, 사실 그땐 미국이 재즈의 원조인 줄도 몰랐어요. (웃음) 돌아보면, 프랑스에서 재즈를 공부한 것이 좋은 운명이었다고 생각해요.”
막상 재즈를 배워보니 “하루 이틀 한다고 배울 수 있는 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절절히 느꼈다. “포기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재즈 보컬리스트가 되려면 허스키한 낮은 목소리가 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소프라노로 이 곡들을 부르면 이상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죠. 당시 선생님께서 재즈엔 한 가지 색깔만 있는게 아니라고, 너의 목소리로 네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3년만 배워볼 생각”이었던 나윤선은 그곳에서 자신의 ‘음악’을 찾았다. 그는 “재즈의 매력은 누가 부르고 연주하느냐에 따라 음악이 달라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곡을 가지고도 다르게 연주할 수 있고, 자유롭게 부를 수 있는 음악이에요. 내 목소리를 바꾸기 보다 내가 가진 소리 그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중점을 두고 공부하게 됐어요.”
끊임없는 시도와 실험은 나윤선의 음악 자체다. 그의 음악적 독창성은 새로운 발성과 소리에 대한 실험에서 나온다. “‘노이즈, 바람소리, 갈매기 소리’처럼 사람이 낼 수 없는 소리의 연구”, 기본적인 호흡법을 통한 발성이 아닌 “아프리카 피그미족처럼 들숨일 때 소리를 내는 법”, “노르웨이 사미족들의 소리”까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연구해 체화하고, 그것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꺼낸다.
그는 음악인생의 변곡점을 “스웨덴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와 만난 때”로 꼽는다. 오스카 피터슨의 마지막 콰르텟 멤버인 바케니우스와 나윤선은 2007년 듀오 공연을 통해 처음 만났다. “이전엔 항상 무대에서 콰르텟이나 퀸텟의 형태로 공연을 했는데, 듀오 공연을 하면서 빈공간이 많아졌어요. 그것을 소리로 채울지 에너지로 채울지 고민하며 음악을 만들다 보니,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처음엔 무대 위에 두 사람 밖에 없으니 벌거벗은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어디에도 숨을 데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벌거벗은 상태로 나갈 때 훨씬 더 자유롭고, 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 이들의 만남은 서로에게 새로운 음악적 영감을 주고, 지나온 음악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무대에서 음악으로 꽉 채워야 한다는 생각도 했는데, 듀오 무대를 열며 더 비워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윤선이 가는 길은 늘 ‘새로운 길’이다. 그의 음악엔 새로 만든 이정표가 세워진다. 자신만의 독창성으로 가득 채워진 음악은 까다로운 유럽 사람들은 매혹했다. 나윤선이 유럽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유학생활 10년째에 접어들던 2005년이었다. 당시 프랑스 앙티브의 재즈 페스티벌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그랑프리를 받았다. 이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프랑스와 독일에서 골든 디스크를 받았다. 독일의 그래미상이라 할 수 있는 에코 뮤직어워드도 석권했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 미국 본토까지 차근차근 정복했다.
그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 재즈는 늙지 않는 음악”이라고 했다. 그 역시 쉼 없는 공부와 노력으로 해마다 고치를 벗는다. 더 나아갈 길이 없다 생각될 때, 또 한 걸음 멀리 가있는다.
“저의 아이돌은 80대 재즈 뮤지션이에요. 그분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한 번도 올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어쩜 저렇게 새로울까 감탄하게 돼요. 노장들은 젊은 뮤지션과 함께 하며 영감을 받고, 젊은 세대는 거장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따라가요. 그래서 재즈는 늘 새롭고, 재즈 뮤지션은 늙지 않아요. 저 역시 제가 존경하는 재즈 뮤지션처럼 머무르지 않고, 계속 새로운 길을 가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