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로부터 열이틀이 지났다. 수많은 젊음의 희생에 국민은 애도했고, 정치권도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잠깐의 애도 후 국회는 벌써 관성처럼 제자리로 돌아와 있다. 국민 생명과 안전에 무한 책임이 있다며 몸을 낮추던 이들이 다시금 안온히 자리 잡은 곳은 다름 아닌 ‘익숙한 정쟁’ 속이다.
짧았던 애도기간에서조차 정치권의 무신경한 발언들이 터져나오며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정쟁을 멈추자”는 초당적 협력은 표면상 휴전에 불과했다. 대통령실 이전이 참사를 초래했다는 책임론, 행정안전부 장관과 용산구청장 등의 책임 떠넘기기식 발언이 쏟아졌다.
이런 말 속에 “참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공허해졌다. 연일 보도를 통해 경찰과 행안부, 대통령실 내 무너진 보고 체계와 지휘 실종이라는 구체적 정황이 밝혀지고 있지만 책임추궁은 망언으로 인해 갈 길을 잃었다. 실제 했거나 하지 않은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인사들이 망언으로 도의적 책임에 몰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펼쳐지고 있다.
사고 원인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혁에 본격 착수해야 할 때에 정치권이 지핀 군불 속에 가려 이태원 참사라는 진실이 멀어질까 우려된다. 국가애도기간이 지나기 무섭게 정부 여당을 향한 공세를 끌어올린 야당, 이를 정쟁화로 규정하고 새로운 공격을 얹는 여당이 얽혀 벌어지는 ‘정치 참사’가 될 것이다.
지난 주말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 이태원 참사 추모 촛불집회를 두고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 배후설’을 꺼내들었다. 또 이번 참사를 전 정권 공격 재료로 삼는 모습도 포착됐다. 야당은 용산경찰서장과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이, 이른바 ‘문재인 정부 알박기 인사’로 요직에 오른 인물이며 이들을 긴급 체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 는가 하면, ‘검수완박’ 때문에 경찰이 ‘셀프 수사’ 비난을 받는다는 정부 여당 주장은 기시감이 들 정도다.
예기치 않게 공개된 ‘문자’와 ‘필담’은 여야 전선을 넓혔다. 문진석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이 받은 희생자 전원 프로필 사진 공개 건의 문자는 비상식적 주장이라는 반발에 부딪혔고, 국민의힘은 이를 놓치지 않고 “유가족 슬픔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패륜 행위”라고 맹공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주고받은 “웃기고 있네” 메모는 민주당에 또 다른 공격 빌미를 제공했다. 심지어 ‘풍산개’도 논란의 중심으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참사가 있던 날 새벽, 밤새 속보를 확인하다 잠깐 붙인 눈을 다시 떴을 때 기자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희생자 숫자가 얼마나 늘어났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바로 다음은 그곳에서 또다시 어떠한 안전관리 구멍이 생겨 참사가 난 것인지, 진실이 밝혀졌을 때 이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정치권에는 국민을 향한 ‘두려움’이 실종돼 있다. 결국 국민이 정치인의 ‘입’을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이 처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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