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얼 드라이브(나타샤 트레스웨이 지음, 박산호 옮김, 은행나무)=퓰리처상 수상 시인 나타샤 트레스웨이의 회상록. 2012년, 2013년 두 차례 연속으로 미국 계관시인으로 선정된 작가가 엄마를 떠올리며 쓴 이 에세이는 작가가 열아홉 살 때 엄마가 새 아버지에 의해 살해 당한 일을 담고 있다. 글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3주 후에 꾼 꿈으로 시작된다. 엄마와 나란히 바퀴 자국의 길을 천천히 돌면서 걷는데 한 남자가 어둠 속에서 지나간다. 나는 그가 한 짓을 알지만 미소를 짓는다. 그 순간 엄마가 내게로 돌아서면서 나는 ‘그것’을 보게 된다. 이마에 동전 만한 크기의 구멍을. 시인은 끔찍한 트라우마로 엄마의 죽음을 망각의 저편으로 몰아넣고 지내다가 30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엄마가 살해된 곳을 찾는다. 오랫동안 방치된 곳에서 시인은 물건들을 정리하며 자신과 엄마의 과거로 돌아가 기억의 우물을 퍼 올리며 상처와 마주한다. 엄마와 백인 남성과의 결혼은 당시로선 정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엄마는 혼혈 아이로 딸이 겪게 될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딸을 보호하고 대비 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혼 후 친척들로부터 떠나 둘 만의 단란한 시간을 보내지만 의붓아버지 조엘의 등장으로 모든 게 산산조각이 난다. 엄마와 딸의 친밀한 관계를 질투한 조엘은 나타샤를 치졸한 방식으로 괴롭히고 엄마에게는 폭력을 행사했다. 작가는 엄마를 단순히 피해자가 아닌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려나가며 남다른 정체성, 엄마의 맹렬한 사랑과 죽음의 유산이 자신을 시인으로 만들었음을 고백한다. 서로를 지키고자 치열하게 노력했던 엄마와 딸의 뜨거운 사랑과 유대를 시적 언어로 담아냈다.
▶가난이 사는 집(김수현 지음, 오월의봄)=판자촌의 역사는 산업화·공업화와 궤를 같이한다. 60년대 초 농촌에서 서울로 인구가 급격히 유입되면서 형성된 판자촌에는 1966년에만 해도 서울시 인구의 38%가 살았다. 1980년대엔 10%가 판자촌에 거주했다. 책은 서울 인구의 40% 가까이 살았던 판자촌의 역사를 통해 가난한 집의 역사를 돌아본다. 판자촌의 역사는 한국 자본주의의 폭력적 실상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강제 철거와 내쫓는 과정이 반복돼 왔다. 저자는 특히 전두환 정권 시절 진행된 합동재개발사업을 주목한다. 주민과 건설업체가 각각 조합원과 참여 조합원이 돼 합동으로 재개발사업을 벌이면서 빠른 속도로 서울 전역의 판자촌을 해체했다. 이 때 줄 잡아 70만 명 이상이 판자촌을 떠나야 했으며, 이들이 영구임대주택, 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쪽방으로 밀려났다고 본다. 저자는 합동재개발사업을 판자촌 주민 관점에서 보면, 자신들의 주거지를 상위계층에게 제공하는 사업이었을 뿐이라며,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사업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판자촌 세입자들을 위한 대책은 거의 없어 치명적이었다는 것이다. 책은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철거민들의 저항도 자세히 다루는데, 특히 목동 주민들의 2년간 100여 차례에 걸친 집회와 시위가 이후 미친 영향을 짚는다. 판자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싼 집의 수요는 존재한다며, 저자는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싸고, 좋은 집’을 우리 사회가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도시재정비의 개발이익이 소유자 뿐 아니라 거기서 살아가는 가난한 계층을 위해 사용돼야 함을 지적한다.
▶코끼리 만지는 인생(이근후 지음, 인디북스)=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하던 때로부터 50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활동하며 고통을 치유해온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행복한 인생을 위한 조언을 담았다. 최근 한 쪽 눈의 시력을 잃고 다른 눈 마저 희미해 장애인과 요양보호사의 녹취 및 타이핑 도움을 받아 쓴 책이다. 평생 정신과 의사로서 활동하며 얻은 인생에 대한 깨달음과 진정한 행복에 대한 통찰, 한국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책 제목은 고사성어 ‘맹인모상(盲人摸象)’에서 따왔다. 인생을 돌아보니 자신의 처지도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도 장님 코끼리 만지는 듯하다는 뜻에서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행복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성취해 가는 것이라며, 절대 공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어찌됐든 내가 만들어 챙기고 느끼면서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나가 버린 것, 닥치지 않은 것들을 걱정하는 대신 지금 현재에서 행복을 힘껏 누리라며,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우리 주변에 퍼져 있는 음모론과 의심이 행복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1989년부터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까지 매해 네팔을 찾아 의료 봉사를 해온 저자는 평소 자신은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히말라야 산속 천막 안에 누워서 따져보니 내가 준 것은 한 줌, 받은 것은 태산 같았다고 돌아봤다. ‘실패는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논쟁에서 이기지 마라’ 등 삶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순하게 풀어놨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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