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4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성왕 루이 9세가 십자군 원정에서 파리로 돌아오자 마자 스캔들에 휩싸였다. 그가 프랑스인들에게는 생소한 카르멜회 수도회 수도자 몇 명을 데려왔는데, 수도자들이 줄무늬 옷을 걸치고 있던 게 문제를 일으켰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악담을 퍼부었고, ‘빗금 쳐진 수도사들’이라며 경멸했다. 1260년대 초 사람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교황 알렉산데르4세는 당장 민무늬 망토로 갈아입으라고 명을 내렸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둘 사이의 격렬한 논쟁, 위협과 다툼은 교황이 열 번이나 바뀔 때까지 이어졌다. 마침내 1295년 교황 보니파시오8세의 특별교서를 통해 모든 수도사는 줄무늬 옷을 입을 수 없다는 명령이 떨어지고서야 흰 망토로 바뀌게 된다.

중세의 줄무늬에 대한 혐오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중세문장학의 대가이자 색채분야의 국제적 전문가인 미셸 파스투로는 ‘스트라이프, 혐오와 매혹 사이’(미술문화)에서 이를 단순히 중세의 문화적 문제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선 좀 다른 입장을 보인다. 즉 줄무늬 옷에 대한 편견은 성경적 문제라기 보다 시각적 문제라는 것이다.

중세 사람들은 바탕과 무늬가 뚜렷하게 구분되고 잘라낸 파이의 단면처럼 물체를 한 면 한 면 차례대로 읽어나가는 데 익숙한데, 바탕색과 무늬색이 구별되지 않는 시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표면 구조를 혐오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책은 무늬나 줄무늬 천의 역사를 고대로부터 21세기까지 살피면서 각 시대가 이전 시대의 풍습이나 체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어떻게 새로운 풍습과 체계를 만들어 내고 상징적 세계를 변주해 왔는지 풍부한 시각 자료와 함께 제시한다.

중세의 악마의 표상인 줄무늬는 중세 말과 근대 초로 넘어가면 악마의 옷에서 하인의 옷으로 위상이 바뀐다. 종속의 기호가 된 것이다. 이어 르네상스와 낭만주의 시대 줄무늬는 기쁨이나 축제, 이국 취향, 자유 등의 의미가 컸다. 가령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가끔 기상천외한 복장을 해야만 예술가로 인정받았는데 그 유별남을 드러내는 방식 중에 줄무늬 옷이 들어가 있었다.

줄무늬는 그저 평면의 무늬일 뿐이지만 시대의 의식을 담고 있기도 하다. 줄무늬의 역사가 시대 정신의 역사로도 읽히는 이유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스트라이프, 혐오와 매혹 사이/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봉만 옮김/미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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