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본 서울시무용단 ‘폴링워터:감괘’

가로18m·세로12m 큰 수조에 2톤 물

“역학 팔괘 중 하나인 ‘감괘’ 8장 구성

”빠른 음악·고혹적 칼군무로 풀어내

“매 장마다 숨은 메시지 찾는 재미도

”21~2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서 첫선

“창작무용 산실 서울시무용단 3인방

”남들 안하는 가장 실험적 작품될 것“

‘폴링워터: 감괘’는 독특한 작품이다. ‘역학(易學)’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설명하는 기호 ‘팔괘’ 중 하나인 ‘감괘’(坎卦)를 8장으로 구성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서울시무용단 단장 정혜진(가운데)과 단원 박수정(왼쪽), 김지은(오른쪽) 씨가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임세준 기자
‘폴링워터: 감괘’는 독특한 작품이다. ‘역학(易學)’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설명하는 기호 ‘팔괘’ 중 하나인 ‘감괘’(坎卦)를 8장으로 구성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서울시무용단 단장 정혜진(가운데)과 단원 박수정(왼쪽), 김지은(오른쪽) 씨가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임세준 기자

오른손을 물 위로 내려치자 하늘을 향해 수십 개의 물방울이 치솟는다. 손을 뻗어올린 각도, 발길이 미끄러지는 속도, 물 위로 그려지는 둥그런 파장이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복제된다. ‘칼군무’의 장인들은 기어이 물이 튀기는 각도와 방향까지 맞췄다.

“이건 사실 과학이에요. 변수가 많은 과학이죠. (웃음)” (정혜진 단장)

‘폴링워터:감괘’의 개막을 앞두고 만난 정혜진 서울시무용단 단장은 “물이 튀는 각도와 정도, 물이 일으키는 포말까지 계산해 안무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2톤(t)의 물이 들어온다. 무대 위에 놓인 가로 18m, 세로 12m의 ‘거대한 수조’에 물이 채워지고, 때때로 그 위에 비가 쏟아진다. 서울시무용단 김지은 단원은 “어디에서도 하지 않은 최초의 시도”라고 했다.

서울시무용단의 ‘폴링워터: 감괘’(10월 21~22일)는 독특한 작품이다. ‘역학(易學)’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설명하는 기호 ‘팔괘’ 중 하나인 ‘감괘’(坎卦)를 8장으로 구성했다. 정 단장은 “운명과 물을 상징하는 ‘감괘’를 표현하기 위해 물 위에서의 춤을 추는 작품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면서 삶의 고난과 역경을 의미해요. 인생에 실패는 없어요. 실패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거죠. 어떤 고난을 겪거나 난제가 오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헤쳐나가는 인간의 의지를 주제로 담아냈어요.” (정혜진 단장)

‘폴링워터: 감괘’는 독특한 작품이다. ‘역학(易學)’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설명하는 기호 ‘팔괘’ 중 하나인 ‘감괘’(坎卦)를 8장으로 구성했다. 사진은 서울시무용단 단장 정혜진(가운데)과 단원 박수정(왼쪽), 김지은(오른쪽). 임세준 기자
‘폴링워터: 감괘’는 독특한 작품이다. ‘역학(易學)’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설명하는 기호 ‘팔괘’ 중 하나인 ‘감괘’(坎卦)를 8장으로 구성했다. 사진은 서울시무용단 단장 정혜진(가운데)과 단원 박수정(왼쪽), 김지은(오른쪽). 임세준 기자

■ 물과의 ‘아찔한 만남’…“체온 저하에 핫팩·쌍화탕 필수”

지난 추석 이후 서울시무용단 단원들을 본격적으로 물과 함께 연습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무용단 연습실은 1.2t의 물로 채워진다. 이 많은 양의 물을 받는 데에 걸리는 시간만 해도 두 시간. “위생과 안전을 위해 매일 깨끗한 물”을 채우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된다.

서울시무용단 박수정 단원은 “물의 존재가 참 어렵다”며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이 가깝지만, 원하는 답을 주니 않는다”며 물과의 첫 만남을 토로했다.

정 단장은 물과 함께 연습을 시작한 날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물 없이 연습할 때는 너무 잘 맞아 감동을 받았는데, 물과 연습에 들어간 첫날 아찔하더라고요. (웃음)” 물에서의 연습은 그만큼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매일 “찬물에서 뒹굴고 춤을 추는 작업”은 “너무나 힘든 과정의 연속”(정혜진 단장)이다. 정 단장은 “체온은 떨어지고 눈과 귀에 물이 들어가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고 했다. 물에 젖은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다. “물의 저항으로 움직임은 느려지고”, “중심을 잡지 못해 미끄러지기 일쑤”(박수정)다. 김지은 단원은 “물에서 춤을 추니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몸이 무거워진다”고 했다.

“물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은 변수가 많아요. 걸을 때마다 저항이 생겨 맨 바닥에서 연습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물과 미끄러움에 대한 두려움 없이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박수정)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거치고 있다. 연습실엔 무용수들의 감기를 예방하는 “쌍화차와 핫팩이 상시 구비”(정혜진 단장)돼있다. 모든 변수도 고려했다. “만일의 부상에 대비해 A팀과 B팀을 꾸렸고”(정혜진 단장), “물 위에서 춤추기 좋은 슈즈와 의상을 매일 실험 중”(박수정)이다.

물에 젖은 무용수들의 얼굴로 흐르는 것은 땀 같기도 하고, 눈물 같기도 하다. 쉬지 않고 “물을 쳐내고 차내는 동작”은 “인생의 고난을 떨쳐내는 것”(정혜진 단장)과 같다. 무용수들에게 그 과정은 실제로도 고통과 역경이었다. 정 단장은 “물 없이 연습하는 것보다 3~4배의 시간을 들이고, 한 신마다 10번의 연습을 더한다”고 말했다. 모든 순간이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합을 맞춰 하나의 신을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요. 물방울 하나 튀기는 각도까지 계산해서 연습하고, 물을 뿌리는 것도 동일한 힘과 동일한 높이를 생각하면서 맞춰가요.” (김지은) “물을 깊게 퍼야할지, 얕게 퍼야할지, 발을 세게 누를지, 살살 누를지, 힘을 어떻게 줘야할 지를 맞춰가는 거예요.” (박수정) 물의 각도를 계산해 “옆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정혜진 단장)도 단원들에겐 중요한 숙제다. “그 과정을 거쳐 우리의 힘과 에너지가 맞아떨어졌을 때 희열을 느껴요.” (김지은)

서울시무용단 단장 정혜진(중앙)과 단원 박수정(왼쪽), 김지은(오른쪽). 임세준 기자
서울시무용단 단장 정혜진(중앙)과 단원 박수정(왼쪽), 김지은(오른쪽). 임세준 기자

■ 고난과 역경의 극복…“장마다 다른 주제…우리 삶의 이야기”

감괘를 작품의 주제로 가져온 만큼 매 장마다 담고 있는 메시지도 많다. 정 단장은 작품의 재연을 준비하며 주역 공부까지 다시 했다. 초연 때 담지 못한 이야기를 보다 심도있고 섬세하게 다듬었다. 그는 “작품에선 삶의 한 장마다 닥쳐오는 어려움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인간의 의지가 그려진다“고 말했다.

김지은, 박수정 단원은 이 작품에 더블 캐스팅돼 ‘남녀 듀엣’을 선보인다. 5장 ‘수천수(水天需), 만겁의 기다림’을 통해서다. 이 장에선 ‘엇갈린 마음’을 표현한다. “남자의 사랑을 몰라주는 여자”(김지은)일 수도 있고, “부모의 한없는 사랑을 알 리 없는 자식”(박수정)일수도 있다.

“이 작품은 각 장마다 옴니버스처럼 구성돼 각기 다른 메시지를 주는데, ‘수천수’는 감정적인 부분이 특히 많이 담긴 장이에요. 모든 인간관계를 남녀에 빗대 춤에 실었어요. 우린 모두 다른 인간이잖아요. 그 안에서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풀어내는 장면이에요.” (박수정)

‘감괘’의 하이라이트는 5장과 6장 ‘중수감(重水坎), 운명의 폭풍’ 사이 등장하는 남자 솔로다. 이 때 대극장의 천정에선 물이 쏟아진다. 마음을 외면 당해 “방향을 잃은” 사람이 “쓰러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이겨내려는 의지를 담아낸 장면”(정혜진 단장)이다. “끝날 것 같은데 끝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 모습이 담겨있어요.” (김지은)

7장 ‘수지비(水地比), 연민의 중력’은 초연과 달라진 부분이다. 정 단장은 “작년엔 이 장면을 만들려다 못 만들었는데 올해엔 마침내 완성됐다”고 말했다. “사람 사이의 연결”을 통해 “인간과 인간이 화합”(정혜진 단장)하는 모습을 담았다. 작품의 처음과 끝 부분도 ‘감괘’를 형상하는 모습으로 설정했다. 남자 한 명(양), 여자 둘(음)이 등장하는 것도 재연에서 달라진 점이다.

1년이 지나 다시 만나는 작품인 만큼 무용수들의 표현도 한층 깊어졌다. 김지은은 “감정이 깊이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고민을 많이 했다”며 ”인간의 삶도 탄생부터 죽음, 또 다른 생명으로의 연결까지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 반복되고 흘러가는 순환의 삶을 담으려 심도있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출산을 하고 돌아온 박수정은 “아이를 품고 있는 물부터가 양수이고, 우리 삶과 직결된 것이 물이라는 것을 느낀다”며 “작품 자체가 인생 이야기 같다. 물의 거침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 삶의 무게와 같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작품 안에 숨은 메시지는 많지만 정 단장은 “관객들은 춤만 보면 된다”고 했다. “상황 설정은 장면을 만들기 위한 우리에게만 필요한 거예요. 관객들은 의미와 주제를 떠나 무대 위의 아름다운 춤만 보면 돼요. 작품의 각 장마다 서로 다른 춤이 엮여 있어요. 사람마다 아픔이 다르니, 서로의 상황에 맞게 느끼면 돼요.” (정혜진 단장)

서울시무용단 단장 정혜진과 단원 박수정, 김지은이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서울시무용단 단장 정혜진과 단원 박수정, 김지은이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창작무용의 산실’…실험정신 위에 쌓은 전통 기반 동시대 춤

장장마다 숨은 메시지를 풀어내는 ‘춤의 세계’는 새로운 시각적 경험이다. ‘폴링워터:감괘’는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빠른 음악, 고혹적인 춤선을 품은 현란한 안무가 이어진다. 잔잔한 호흡으로 시작되는 독무, 애절한 2인무, “오와 열이 딱딱 맞는 군무”(박수정)가 감괘의 세계관 안에서 이어진다. 정 단장은 “쓰러지고 넘어지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굉장히 특징적인 안무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춤으로 단련된 무용수들이 끌어내는 현대적 춤의 감각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전통을 토대로 ‘동시대의 춤’을 추기에, 기존의 고전무용이나 현대무용과는 완전히 다르다.

정 단장은 “한국무용은 느리고 선이 아름다운데 현대적 춤은 선의 아름다움만으로는 표현이 어렵다. 현대의 테크닉을 받아들이며, 근육의 힘을 써서 에너지가 나오도록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춤을 추는 것은 무용수들에게도 많은 고민을 안겼다. 주어진 춤을 소화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기 안에서 새로운 춤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서울시무용단 단원들 안에서도 이어진다.

김지은은 “춤의 장르가 다양해졌고, 스트리트나 K팝, 컨템포러리 등 대중이 원하는 것은 현란하고 화려한 춤으로 바뀌고 있다”며 “단조롭고 느리고, 미학적 선을 가진 한국무용과 어떻게 융합하고 접목해 우리만의 춤으로 풀어낼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적 호흡을 바탕으로 빠르고 현란한 동작에 접목할 때 거부감이 들지 않고 유려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김지은) 전통춤을 기반으로 해온 무용수들이 현대적 몸짓을 요구받았을 때, 낯섦과 어려움은 당연히 따라온다.

“우리만이 쓸 수 있는 호흡적 에너지를 어떻게 표현할까, 작은 움직임 안에서도 섬세하고 우아한 한국적 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단지 동작만이 아니라 전체 무용수의 모습으로 보이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뒤처지지 않고, 우리 문화가 소외되지 않으려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김지은)

그 안에서 춤은 결국 “장르적 구분을 떠나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있어야 한다”(박수정)는 믿음은 변함이 없다.

‘감괘’는 ‘창작무용의 산실’이었던 서울시무용단이 선보이는 “가장 실험적 작품이자, 단체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담은 작품”(정혜진 단장)이다.

“서울시무용단의 정체성은 창작무용에 있어요. 남들이 안 하는 것을 찾아, 이 시대의 언어를 만들어 우리 것이 좋은 거라는 점을 보여줘야 하죠. 작품 하나를 해도,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것을 하려고 해요. 이미 해오던 것을 절대로 답습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방향성이에요. 사실 모든 무용단이 춤은 잘 춰요. 다만 그 사람들의 어떤 특기를 넣어, 더 돋보이는 작품으로 만들 것인지, 어떻게 하면 지속성을 가지게 할 것인지가 숙제라고 생각해요.” (정혜진 단장)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