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는 24절기 중 ‘가을의 시작’ 의미

이상기온에 매미와 귀뚜라미 동고동락

이날 날씨 따라 올 농사 풍·흉작 점쳐 

2000년전 한무제가 기용한 신하 동중서

농토 빼앗기고 소작농 전락한 백성 처지

‘입추여지’글귀로 폭정 향한 원망 담아내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송곳 끝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빽빽하게 들어찬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른 것이다. 절기 입추(立秋)와는 0.001%도 관련이 없다. 무더위가 절정을 치닫고 있는 7, 8월 가수 싸이의 전국 ‘흠뻑 쇼’에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다는 소식에 이 말이 왜 떠올랐을까.

8월 첫 번째 주말인 7일은 24절기 중 13번째 절후인 입추다. 이는 여름이 지나 가을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아직 한낮에는 아스팔트를 달구는 열기와 습기로 숨통이 조여들지만 해가 지면 선선함이 느껴진다. 그악스럽던 매미의 울음소리도 잦아들면서 텃밭에는 가을 정취가 살아나 알알이 결실을 맺어 간다.

입추가 지나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슬이 내리며 쓰르라미가 운다’라고 한다.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온 때문인지 입추가 지나기도 전에 귀뚜라미는 우렁찬 연주로 출근길을 배웅하고, 퇴근길에는 쓰르라미의 떼창이 함께한다.

잦은 비와 함께 따가운 햇살은 텃밭 친구들에게 반가운 성찬이나 다름없다. 하루가 다르게 폭풍 성장 중인 고추, 오이, 깻잎 등을 바라볼 때면 매시매 분마다 기운차게 벋어나가는 생명력에 깜짝 놀라곤 한다.

연일 뛰는 장바구니 물가에 텃밭에 대한 고마움과 작물들이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올해 고추와 무 등 채소류 수확이 신통치 않다는 지인의 말에 올가을 김장에 대한 걱정이 기우였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하지만 올여름 재래시장의 채소류 가격이 전년보다 25.9%나 뛰었다는 뉴스와 무심코 담던 오이도 뛰어오른 가격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지 않게 됐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2~3일에 한 번 수확하는 오이와 꽈리고추, 그리고 부추는 돈 들이지 않고 먹는 식재료로 그 쓰임을 다하는 중이다. 더구나 농약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생선 부산물과 깻묵과 한약 찌꺼기 등을 발효시켜 가꾼 친환경 작물이다 보니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채취해 먹을 수 있으니 싱싱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 양도 크게 줄어드는 효과를 누리게 됐다.

2~3평 화단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오이.
2~3평 화단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오이.

또 2~3평 남짓한 화단 텃밭을 가꾸면서 바뀐 습관 중의 하나가 바로 하늘 바라보기다. 비가 안 오면 가뭄 때문에, 또 너무 많이 오면 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물러질까 걱정이 앞선다. 농사를 중심으로 쓰인 절기 관련 문헌에 날씨 점(占)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입추 때 하늘이 맑으면 풍년이, 비가 조금 내리면 길하다 점쳤다. 태풍이 오고 폭우와 천둥이 치면 흉작이 든다고 불길하게 여겼다. 올해 입추 날씨는 어떨까.

기상청에 따르면 입추인 7일에는 전국이 대체로 흐리고 곳곳에 소나기가 내리겠다. 다행히 이날 천둥 뇌우는 없어 풍작을 기대해 볼 만하겠다. 입추 이후 폭염특보의 확대로 온열질환 발생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보되어 노인과 영유아 등은 야외활동을 줄이고 건강관리에 주의가 필요하다.

사족 하나, 글머리에서 거론한 ‘입추의 여지가 없다’라는 말의 유래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방은 진시황제가 세운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한나라를 세웠다. 세월이 흘러 한나라 7대 황제로 16세의 한무제가 등극하게 된다. 그는 바른 정치를 위한 유교의 국교화를 위해 동중서를 기용하고 흉노를 징벌하는 등 외치로 눈부신 업적을 이룬다. 하지만 말년에는 자신의 측근만을 가까이하고 충신의 간언에는 귀를 닫은 채 폭정을 일삼는다. 그의 주변에는 간신들로 들끓었으며 무리한 정복과 불로장생에 대한 욕망 등으로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다. 이에 분개한 동중서는 관직을 벗어 던지고 낙향하면서 한무제를 원망하는 글을 남긴다.

“소수의 간신배들이 나라의 땅을 독식하고 있어 자작농은 소작농이 되고, 소작농은 노비가 되니 가난한 백성은 이제 ‘송곳을 꽂을 만한 땅조차 없구나(입추여지:立錐餘地)’. 간신배와 줄 닿은 시골 탐관오리들도 뺏고 뜯기에 광분해서 백성은 이미 말과 소와 같은 옷을 입고 개나 돼지의 먹이를 먹는 지경이 되었구나.”

이름도 생소한 동중서의 이 글이 지금까지 빛이 나는 이유는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과도한 부나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경계하라는 위정자들의 향한 당부가 아닐까 싶다.


yi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