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일찌감치 ‘1인 시위’ 시작
확성기 들고 “국가가 책임져라” 호소
경찰, 집무실 바로 앞 ‘1인 시위’는 저지
“기속력 없다”지만 당혹스러운 표정
“집무실 주변 집회신고 대응방안 검토중”
[헤럴드경제=강승연·김영철 기자] 용산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에서도 집회가 가능하다는 법원 판단에 경찰이 긴장하고 있다. 집무실 주변으로 주요 보수·진보단체들의 집회가 집중될 수 있어서다. 법원 결정 이튿날 아침에도 집회 신고가 필요 없는 1인 시위자들이 집무실 앞으로 몰리는 등 ‘집회 메카’로 떠오를 가능성에 경찰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3일차인 12일 오전 7시47분께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건너편 인도에서 일찌감치 ‘1인 시위’에 나선 시민 3명을 볼 수 있었다. 한 중년 남성은 6·25 참전 사실을 인정해 달라는 현수막을 들고 “범법 경찰 썩었다, 윤석열은 책임져라”고 외치고 있었고, 몇 발자국 옆에서는 경찰의 편파수사를 비판하며 재수사를 촉구하는 피켓을 든 한 여성이 서 있었다. 두 사람 바로 뒤에는 사이버범죄 피해를 해결해 달라는 장기 시위자가 노숙 농성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전 8시가 가까워지자 서울 마포구 대흥2구역 재개발로 인한 주거 생존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도갑현(73·여) 씨가 1인 시위 행렬에 합세했다. 도씨는 빨간색 확성기를 들고 “윤석열 대통령님, 지자체에 떠넘기지 말고 국가가 책임져주십시오. 국민이 한평생 일군 자산을 한순간에 빼앗겼습니다”라고 연신 호소했다. 아어 “5년 동안 청와대 앞에서 노숙 투쟁을 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에는 (인수위가 있던 서울)종로구 통의동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엔 이곳으로 시위 장소를 옮겼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각종 팻말을 든 1인 시위자가 한두 명 나타나기 시작했고, 경찰은 1인 시위자들이 도로로 넘어가지 않도록 질서유지선과 펜스를 설치했다. 집무실 앞 인도와 건너편 인도에 배치된 10여 명의 경찰들은 1인 시위자들이 행여 행인과 부딪힐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며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라 시위 장소를 바꾼 것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며 지하철 시위 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최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4·6호선 삼각지역으로 시위 장소를 옮기고, 휠체어에서 내려 기어서 지하철에 오르는 오체투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오후에는 다인건설 오피스텔 공사 중단 피해자들이 대주단 책임을 요구하는 집회를 삼각지역 12번 출구 앞에서 연다.
청와대 주변에서 열리던 회견도 집무실 주변으로 이동했다. 지난 11일 집무실 인근에서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요구 기자회견과, 아시아나케이오 공동대책위원회의 해고 노동자 복직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여연대와 용산구 동자동의 주민단체도 이곳에서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지구 지정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1일 성소수자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서울 용산경찰서장을 상대로 낸 집회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무지개행동은 오는 14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기념대회를 열기 위해 용산역 광장에서 삼각지역·녹사평역을 거쳐 이태원 광장까지 2.5㎞ 행진하겠다고 집회 신고를 냈었다.
경찰은 대통령 관저 주변 100m 이내에서 옥외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대통령 집무실에도 적용된다고 봤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집회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며 집무실과 관저가 붙어있던 청와대처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1회에 한해 1시간30분 이내에 신속히 이동하라는 조건을 붙였다.
집시법 소관기관이자 1차 유권해석기관이기도 한 경찰은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번 가처분신청에 대해 집행정지 결과가 나온 것이지, 사실상 기속력(판결의 구속력)은 없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향후 집시법 해석 방향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또 이번 법원 결정으로 집무실 주변 집회·기자회견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응 방안을 강구하는 모습이다. 당장 윤 대통령 취임일부터 집무실 주변 집회 신고를 냈다가 금지통고를 받았던 신자유연대 등 보수단체들은 집회에 적극 나설 분위기다. 김상진 신자유연대 대표는 “집무실 100m 근방이라는 이유로 금지 통고됐던 것이라, 한 군데가 풀리면 다 풀린다”이라며 “금지통고가 해제되면 저희가 모든 집회들의 선순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향후 집무실 주변 집회 신고에 대한 대응 방안에 대해 아직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집무실 외곽 경비를 담당하는 202경비단 관계자는 “법원 결정 때문에 시위 허용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다만 집무실 정문 바로 앞 인도에서는 1인 시위도 저지하고 있다. 이곳에서 1인 시위를 하려는 시민들에게는 건너편 인도로 넘어가서 진행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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