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된 세계화의 시작을 흔히 15세기 이후 대항해시대에서 찾지만 발레리 한센 예일대 교수는 기원 후 1000년을 세계화의 원년으로 지목한다. 오늘날의 세계는 이때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지난 30년간 중국사와 세계사, 문명 교류사를 연구해온 역사가인 발레리 교수는 저서 ‘1000년’(민음사)에서 당시 세계 각 지역에서 일어난 주요한 움직임을 포착, 물건과 사람, 기술과 종교가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고 부딪히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가 보여주는 1000년의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현상은 각 나라와 지역의 4대 종교로의 수렴이라 할 만하다.

예를 들어,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부족들은 10세기에 이르러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했다. 카라한 왕조도 그 하나로, 1006년 오랜 경쟁자였던 동쪽의 불교 왕국 호탄을 정복, 이슬람으로 개종시킨다. 바로 지금의 신장 위구르 지역으로 이슬람화의 출발점인 셈이다.

동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데 러시아인의 조상, 루스인들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1세는 전통 신앙을 대신할 적절한 종교를 물색하던 중 4대 종교 중 정교회를 선택, 지금에까지 이른다.

아시아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거란족의 요나라 황제는 1026년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던 가즈나 왕조의 술탄에게 선물을 보내 우호관계를 맺자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술탄은 서로 종교가 다르니 떨어져 있는 게 낫다며, 이슬람교를 받아들여야 친교가 가능하다고 사절을 돌려보냈다.

저자는 1000년 무렵 전 세계의 왕국들이 앞다투어 주요 종교로 개종했다며, 세계인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됐다고 지적한다.

이 시기, 무역로를 따라 상품이 이동하면서 세계인의 삶의 모습이 바뀌는 세계화 현상도 포착된다.

송나라의 광저우와 취안저우는 국제 무역항으로 전 세계 상인들이 모여 온갖 상품을 거래했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중국에서 수요가 많은 향신료를 개발하는 등 상품 수출에 눈뜨게 된다. 중국은 도자기에 아람문자를 흉내낸 문양으로 무슬림 소비자를 유혹했다. 고온에서 빚어내는 송나라 도자기를 당해내지 못하고 이슬람의 도공들은 위기를 맞게 된다.

저자는 순환하는 세계를 연결한 첫 사건으로 바이킹 탐험가들이 캐나다 뉴펀들랜드에 상륙한 걸 꼽는다. 식량이 부족했던 노르드인들은 땅을 찾아나섰고 그린란드를 거쳐 캐나다에 발을 딛게 되지만 투석기까지 동원한 토착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얼마 못가 철수했다. 노르드인들에게는 철제 무기가 있었지만 기술적 차이가 크진 않았다.

저자는 당시 각 지역의 주요 사건을 연결, 새로운 지도를 완성해내며, 세계화의 첫 장면에서 벌어진 갈등과 협력이 현재 세계화의 문제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1000년/발레리 한센 지음, 이순호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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