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기 법원장 부장판사들 모아 입장 표명 요구
조국, 정경심, 사법농단 재판부도 소집돼
김남국 의원 ‘판사 집단행동 요청 의혹’ 다음날
참석자들 다수 ‘정치적 중립성’ 이유로 거부
윤석열 집행정지 기일 3일 전…‘재판에 영향’ 비판도
[헤럴드경제=좌영길·안대용·유동현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의 최측근인 민중기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이 2020년 재직 당시 형사 합의부 판사들을 불러모아 이른바 ‘판사 사찰’ 문건과 관련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비판하는 의견을 낼 것을 요구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윤 전 총장의 집행정지 심문기일을 열기 불과 3일 전이었고,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이 ‘판사들이 움직여줘야 한다’고 누군가와 통화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로 다음날 법원장이 개별 재판부에 사실상 집단행동을 권했던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4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민중기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은 2020년 11월 27일 소속 법원 형사 합의부 부장판사들을 불러모아 이 같은 뜻을 전했다. 이 모임에는 민 원장과 김병수 형사수석부장판사를 포함해 조국 전 장관과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 재판장이었던 김미리 부장판사, 정경심 전 교수 사건과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심리 중이었던 형사25부 김선희·임정엽·권성수 부장판사, 사법 농단 사건들을 맡았던 윤종섭 부장판사와 유영근 부장판사 등 총 10명이 참석했다.
민 전 원장은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수집한 판사 동향 문건을 언급하며 판사 사찰 문건에 등장한 형사 합의부 부장판사들이 입장표명을 하는 게 어떤지를 물었다. 하지만 민 전 원장을 제외한 참석자 중 김병수 수석부장판사를 포함해 2명만 찬성 의견을 냈고, 나머지는 모두 반대했다. 이후 김병수 형사수석은 반대 의견을 낸 판사들을 상대로 재차 설득에 나서기도 했다.
입장표명을 해야 한다는 쪽은 이 사안이 검찰의 판사 사찰이 명백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반면 반대 의견을 낸 판사들은 정보수집이 부적절하긴 하지만 이미 알려진 내용을 사찰이라고 보기 어렵고, 정치적 파장이 큰 사안에 의견을 낼 경우 법원의 중립성은 물론 현재 진행 중인 재판 신뢰도까지 의심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이날은 서울행정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배제 효력을 정지할지를 심리하는 집행정지 심문기일을 3일 뒤인 30일로 지정한 날이었다. 관련 사건 판단을 앞두고 중앙지법 형사합의부장들이 단체로 의견을 낼 경우 신뢰저하가 예상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2020년 11월 24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 직무 배제를 명령했다. 재판부 동향을 불법으로 파악했다는 내용도 사유로 삼았다.
이 시기는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일었던 직후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은 2020년 12월 초 김남국 의원이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판사들이 움직여줘야 한다’거나 ‘여론전을 벌여야 한다’ ‘섭외 좀 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이 이 문제를 공론화하자 김 의원은 ‘통화 상대방은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아니었다’면서도 누구와 이야기를 나눈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밝힌 문제의 통화시점은 2020년 11월 26일 오후 7시께였다. 김남국 의원의 통화했다는 다음날 민 전 원장이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들을 불러모아 집단행동을 권유한 셈이다. 민 전 원장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최측근으로,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법 농단 사태’ 진상파악을 위한 추가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법원장 임기는 2년이지만 김 대법원장이 이례적으로 민 전 원장을 유임하면서 2018~2021년 서울중앙지법 법원장으로 3년간 재임했다.
헤럴드경제는 왜 이런 모임을 소집했는지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연락을 했으나 민 전 원장은 통화에 응하지 않았다. 다만 문자메시지를 통해 “여러 의견을 들었고 입장표명을 요구한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거나 “당시 현안에 관해 당사자인 형사부 부장들의 의견을 들어본 것으로 기억한다”고 2차례에 걸쳐 답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장이 개별 재판부에 현안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2008년 법원장이었던 신영철 전 대법관이 판사들에게 e-메일을 보내 촛불시위 사건을 중단하지 말고 처리할 것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던 사례가 있었다. 한 전직 부장판사는 “다른 동료 판사가 재판을 앞두고 있었고, 선배로선 오히려 그 사건을 심리하는 판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도리인 것 같다”며 “한쪽에 힘을 싣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재판을 하는 형사합의부장들을 모아서 성명을 내라고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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