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땅끝·아틀란틱코스
투이 남서쪽 35㎞ 밖 과르다를 시작으로
콜롬버스 아메리카 원정 귀환성지 바요나
잠언 글귀 바닥에 새겨둔 폰테베드라
먼저 완주한 순례자도 동네주민도
완주 환영 함성 울리는 산티아고 대성당
그리고 시작되는 ‘땅끝마을길’…
서풍 매서운 대서양 언덕 위에 서서 대양을 내려다 본다.
스페인 말로 ‘땅끝마을’, 피스테라(Finisterra=Fisterra)이다. 유라시아 대륙 동·서 종점 파트너인 해남 땅끝마을 처럼 등대가 있고, 순례자의 낡은 신발 청동상이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또 하나의 목적지다. 북쪽 곶(串) 무시아는 ‘죽음의 길’이라는 닉네임이 무색하게, 희망·벽사( 邪)의 상징물이 많다.
보물선 침몰이 많았던 대서양을 오래도록 발 아래 굽어보는 순례길로는 포르투갈 코스도 있다. 1200년간 수많의 사람들의 성찰,힐링,다짐,우정을 새긴 100여개 코스 중 98%의 종점은 성 야고보의 유해가 모셔진 산티아고이고, 종점이 다른 곳은 무시아와 피스테라 2곳이다. 포르투갈 코스의 스페인 출발점 투이와 포르투갈 발렌사는 미뇨강 다리가 국적을 갈랐다. 두 마을엔 같은 동백이 피고, 같은 귤나무가 자란다. 상대편 마을에서 우리 동네가 더 잘 보인다. 출입국 절차는 커녕 보초 한명도 없어, 다리는 조깅코스다.
▶투이, 카스트로 셀타=2000년 된 마을 투이는 13세기 대서양변 순례길을 개척한 어부 출신 성인, 산텔모의 고향이다. 어느 집은 순례길 가리비 표식 모양으로 큰 정원을 만들어놓았다. 투이 대성당으로 향하는 골목은 낡은 타일, 고풍스런 벽, 그 틈새로 자라난 풀들, 자연스러워 더 정감이 간다.
투이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성모마리아상은 임신 상태로 모셔져 있고, 십자가와 채플을 들고 있는 흑인 여성 성인상, 순례길 상징인 가리비를 추앙하는 부조도 있어 이채롭다.
태평양, 인도양을 가끔 접하던 우리가 대서양을 대놓고 굽어보는 첫 지점은 투이 남서쪽 35㎞ 떨어진 과르다(산타트레가)이다. 대서양변 절벽 꼭대기에 서면, 누구든 영화배우가 된다. 발 아래로는 미뇨강 하구, 포르투갈 몰레도 해변으로 몰려드는 거대 파도의 릴레이가 펼쳐진다. 태양은 일과를 접는데, 서풍과 파도는 잦아들 줄 모른다.
철기시대 켈트인들이 살던 돌벽 움집 빌리지 ‘카스트로 셀타’는 수십개의 동그라미가 붙은 모습으로 장관을 이룬다. 발 아래엔 아름다운 해변 엘라소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바요나, 비고=과르다에서 수직선 대서양 해변길을 따라 30㎞가량 북쪽으로 가면 콜롬버스 아메리카 원정대 귀환 성지, 바요나를 만난다. 원정대 3척 중 라핀타호가 1493년 3월 1일 이곳에 가장 먼저 귀환하면서,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원정 성공 사실을 유럽 최초로 알게 된 곳이다.
항구앞 공원에는 신구 두 세계의 만남(인카운터)이라는 귀환 500주년 기념 조각과 아메리카로부터 이주해 힘겨운 생활을 했던 노예 동상이 서 있어 대조를 이룬다.
골목안 걷기는 중세 시간여행이다. 미세리코르디아(자비) 성당은 왕립교회이고, 골목 마다 전통이 묻어나는 공방과 가게가 있다. 바요나 마을을 일구는데 기여한 어촌계 이장님 호메나세 석상 옆으로 자전거 순례자들이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바요나-니그랑을 잇는 중세 다리의 전설이 흥미롭다. 불임 여인이 자정 지나 처음 만나는 남자에게 “배에 물을 부어달라”고 요구해 그가 응하면 임신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몇몇 채플에선 실제 배에 물을 붓는 세례도 한다.
셀타비고팀의 홈 비고에서 부터 땅끝 피니스테라 까지의 지형을 보면 리아스식 해안이다. 신(神)이 오른손바닥을 눌러서 다섯손가락 모양의 만(灣:bay)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만 속엔 파도가 약해 굴 등 수산물 양식장(Batea)이 빼곡하다. 비고 해변산악 요새에서도 대서양을 굽어본다. 물살이 험해 침몰선 보물이 많다던 ‘해저이만리’ 소설 무대이다. 시내에는 교통약자들의 수고를 덜어주려는 오르막 보행길 무빙워크, 까다로운 식생의 동백꽃 가로수 길이 있어 눈길을 끈다.
▶폰테베드라, 산티아고=비고에서 30㎞ 가량 더 가면 속초 만한 해양역사도시 폰테베드라를 만난다. 도보여행하기 좋다. 거리 곳곳에 무너지다 만 문화유적, 도시를 지킨 사람들의 충혼탑, 오래된 돌담 등이 보인다. 우체국, 시청 등은 고풍스런 전각 그대로 쓴다.
아파트는 주황색 지붕과 갈리시안 스타일인 발코니 돌출형 흰 창문 등 온고지신 디자인으로 꾸몄다. 별 모양 분수와 순례자 응원·잠언 글귀를 땅바닥에 새겨둔 곳이 폰테베드라의 랜드마크. 루시아 수녀원은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님이 나타났다는 얘기로 유명하다. 포르투갈의 파티마수녀원과 함께 가장 성스러운 양대 수녀원으로 꼽힌다.
곧 산티아고다. 시 외곽에 있는 ‘시티 오브 컬쳐’ 종합문화예술 시설은 서울의 DDP를 닮았는데, 규모는 3배 가량 된다. 신진 예술인들의 창작과 공연, 아카이브 등 다양한 예술장르를 향유하는 곳이다. 야외엔 거대한 순례운동화 동상이 산티아고 대성당을 응시한다.
드디어 산티아고 대성당. 이곳은 1~2분에 한번씩 함성이 들린다. 지난 13일 오후 5시 ‘오비에도 예수성심회 오케스트라’의 환영 연주 속에 청년 10여명이 가랑비를 뚫고 100㎞ 이상을 걸은 끝에 당도했다. 먼저 완주하고 쉬던 순례자도, 동네주민도, 마중나온 지인들도 열렬한 축하인사를 건넨다.
65세 동갑인 마누엘 프란시스코와 후안 안토니오도 불과 일주일 떨어져 지낸 가족과 이산가족 상봉하듯 포옹한다. 둘은 어릴 적 의기투합하듯 도전했고,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1200년 동안 이어진 풍경인데도 늘 새롭다고 입을 모았다.
▶무시아 그리고 땅끝=이게 끝이 아닌 순례자들도 많다. 산티아고 대성당 종점 진입로에서 직진하면 ‘땅끝마을길’이 시작된다.
무시아에선, 성 야고보(산티아고)가 스페인 포교에 어려움을 겪자, 성모마리아가 야고보를 응원하기 위해 돌로 된 배를 타고 이곳에 나타났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세상의 종말을 상징하던 무시아엔 희망의 돌 3개가 있다. 인체의 장기를 닮은 카드리스는 그 밑으로 사람이 지나가면 액운이 사라진다는 속설을 가졌다. 아발라는 올라서서 굴렀을 때 움직임이 있으면 죄가 없어진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깨져 천사가 굴러도 흔들리지 않는다. 인간이 가공한 돌 ‘라 에리다’도 있다. 2007년 150만명이 바다의 기름을 함께 제거했던 한국의 태안처럼, 이곳에서도 2002년 거센 파도에 유조선이 두 토막 나는 사고가 있었는데, 수년에 걸쳐 잘 극복해냈고,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에서 세운 유류피해극복 기념비이다.
‘진짜 땅끝’ 피스테라의 낡은 운동화 동상은 순례자에 대한 존경을 품고 있다. 그 옆엔 종점까지 왔다가 숨진 순례자의 무덤도 있어 경건해진다.
피스테라에서 만난 순례자 주앙(53)은 “미술가인데 락앤롤 아티스트에 도전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순례길의 다양한 면모에서 영감을 얻으려했다. 결과는 대만족”이라고 했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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