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명문’ 명창 왕기철ㆍ왕윤정 부녀

 

아버지는 20년 만에 국립극장 ‘흥보가’ 완창

현직 학교장 최초의 완창 판소리 무대

딸은 국립창극단 ‘리어’로 새로운 도전

2세 꼬리표 떼고 한 명의 예술가로 날개 펴

“즐기는 명창”, “미래 세대의 디딤돌” 되길

왕기철 명창의 집안은 유명한 ‘판소리 명가’다. 왕 명창은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형(故 왕기창)을 따라 소리를 배웠고, 동생은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이다. 국립창극단 단원인 딸 왕윤정은 성실히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있다. 이상섭 기자
왕기철 명창의 집안은 유명한 ‘판소리 명가’다. 왕 명창은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형(故 왕기창)을 따라 소리를 배웠고, 동생은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이다. 국립창극단 단원인 딸 왕윤정은 성실히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딸, 오늘 예쁘네. 연습 잘했어?” 찬바람을 맞으며 달려온 딸의 얼굴을 보자 왕기철 명창의 얼굴에 ‘아빠 미소’가 번졌다. 아버지의 DNA를 이어받은 딸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예술적 끼가 보이더라고요. 어린 애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노는데 몸이 다르다는게 느껴졌어요. 공부보단 예술 표현이 탁월하더라고요.(웃음)” 아버지는 그런 딸을 직접 가르쳤다. 스승은 이제, 같은 길을 걷는 선후배이자 동료가 됐다. 딸 왕윤정은 “지금은 서로 피드백을 해주는 친구 같은 사이”라고 말한다. 딸이 아빠를 부르는 ‘애칭’도 있다. “우리 딸이 철이, 철이 해요. 다른 집에선 절대 그렇게 못할 거예요. 그만큼 소통이 잘돼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웃음)”

‘소리꾼 부녀’는 요즘 정신없이 바쁘다. 소릿길 50년을 바라보는 왕기철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교장(59)은 이제 막 새학기가 시작돼 일 년 중 가장 바쁜 때를 보내면서도, 오랜만에 완창 판소리에도 도전한다. 당대 최고의 명창들만 서는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 무대 ‘흥보가’(3월 12일·국립극장 하늘극장)다. 현직 학교장이 ‘완창 판소리’ 무대를 갖는 것은 왕 명창이 처음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난해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국립창극단 정단원이 된 왕윤정(32)은 창극단 신작 ‘리어’(3월 17~27일·국립극장)의 무대를 앞두고 있다. 작품에선 리어왕의 둘째딸 리건 역을 맡았다. 입단 이후 가장 큰 역할이다.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는 부녀를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소리꾼 부녀’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왕기철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교장은 당대 최고의 명창들만 서는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 무대 ‘흥보가’(3월 12일·국립극장 하늘극장) 무대에, 왕윤정은 국립창극단 신작 ‘리어’(3월 17~27일·국립극장)의 무대를 앞두고 있다. 이상섭 기자
‘소리꾼 부녀’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왕기철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교장은 당대 최고의 명창들만 서는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 무대 ‘흥보가’(3월 12일·국립극장 하늘극장) 무대에, 왕윤정은 국립창극단 신작 ‘리어’(3월 17~27일·국립극장)의 무대를 앞두고 있다. 이상섭 기자

■ 각기 다른 무대…아버지는 완창 판소리·딸은 창극

명창에게도 무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왕 명창은 “오랜만의 완창 무대에 설레기도 하지만, 부담과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국립극장에서 ‘흥보가’ 완창 무대를 선보이는 것은 무려 20년 만이다. 봄과 함께 ‘홍보가’를 선택한 것도 “코로나와 경기 불황으로 힘든 시기에 제비가 물고 온 희망의 박씨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다. 무대를 향한 객석의 기대감은 이미 입증됐다. 공연 티켓은 추가좌석까지 오픈했는 데도 일찌감치 매진됐다.

“직책의 무게도 그렇고, 보는 눈들이 있어서인지 부담이 크더라고요.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 긴 분량의 사설을 암기하는게 힘들기도 하고요. 요즘 차 안에서 하루에 한바탕은 무조건 연습해요. 교장실에는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 흥얼거릴 수가 없더라고요.”

교장 선생님의 무대에 학교 교사들은 물론 학생들은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을 감수했다. 왕 명창은 “이 공연을 통해 학생들에게도 최고의 예술 인재, 한류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모쪼록 희망의 박을 잘 타야죠.”

아버지가 완창 무대에 오르는 시간에 딸은 창극 ‘리어’의 무대 리허설을 가진다. 왕윤정은 “눈으로 기록하고 싶고, 직접 듣고 싶은데 볼 수 없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왕 명창이 금세 말을 받았다. “어어? 아버지가 오랜만에 완창을 하는데…가만 있어봐. 많이 서운해.” 농담처럼 서운함을 토로했지만, 왕 명창에겐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딸의 모습이 대견하다. 딸의 국립창극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은 하루가 일 년 같았다. 왕 명창은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고 했다. “차라리 내가 시험 보고 말지, 자식이다 보니 어디 전화해 물어볼 수도 없고, 그걸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힘들더라고요.” 딸의 합격 소식에 아버지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왕윤정은 창극단 입단 이후 ‘나무, 물고기, 달’, ‘귀토’, ‘흥보전’을 거치며 매작품 살아있는 캐릭터로 존재감을 발하고 있다. 해사한 얼굴로 천연덕스런 표정을 짓다가도, 애끓는 소리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이번엔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줄 ‘리어’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아버지의 모든 것을 빼앗기 위해 아첨하다가도 냉정하게 등을 돌리는 모습과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의 부드러움을 두루 표현하는 것이 제 숙제예요.” 딸의 이야기를 듣던 왕 명창은 “양면의 연기를 그려내는 것이 쉽지 않다”며 “내면의 변화를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그런 것 같아요. 딸들이 남자친구한테는 한없이 주는 것 같은데, 아버지한테는…” 왕 명창의 헛웃음에 딸의 목소리가 커졌다. “난 잘하잖아!” (왕윤정) 친구 같은 부녀가 맞다. 매일 연락하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무대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조언한다. “사실 너무 잘해요. 집사람이 그래요. 윤정이 시집가면 외로워서 어떡하냐고. 벌써 걱정이에요.” (왕기철)

1999년 국립창극단의 ‘심청전’을 통해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섰던 왕기철, 왕윤정 부녀는 스승과 제자이자, 오랜 선후배이며, 이제는 친구로 서로의 무대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이가 됐다. 이상섭 기자
1999년 국립창극단의 ‘심청전’을 통해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섰던 왕기철, 왕윤정 부녀는 스승과 제자이자, 오랜 선후배이며, 이제는 친구로 서로의 무대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이가 됐다. 이상섭 기자

■ 소릿길 걷는 부녀의 삶…명창 아버지와 2세

왕 명창의 집안은 유명한 ‘판소리 명가’다.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형(故 왕기창)을 따라 소리를 배웠다. 왕 명창은 열여섯 살에 향사 박귀희의 제자가 됐다. 서울국악예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국악과에 입학한 국내 ‘판소리 학사 1호’. 1985년에 제1회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판소리 부문에서 금상 없는 은상을 받은 이후 전주대사습놀이, KBS국악대상을 휩쓸며 ‘현존 최고의 명창’이 됐다. 동생은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이다. 딸 왕윤정은 성실히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있다. 그간의 성취가 아버지 못잖다. 2007년엔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학생부 금상, 국립창극단 차세대명창으로 선정됐고, 2020년 제30회 KBS국악대경연 성악 부문 대상을 받았다.

부녀가 처음 한 무대에 섰던 것은 23년 전인 1999년이다. 국립창극단의 ‘심청전’ 무대를 통해서다. 교육자의 길을 걸었던 왕 명창이 30대 후반이 돼서야 오래 품은 꿈에 도전한 때였다. 국립창극단에 합격해 ‘제2의 인생’을 막 시작하던 때에 초등학생인 딸이 오디션을 통해 ‘어린 심청’ 역에 낙점됐다. “얼마나 큰 무대예요. 그땐 윤정이가 실수할까봐 너무 불안하더라고요. 그런데 무대에 올라가니 ‘아버지, 진지 잡수셔요’ 하는데 떨지도 않고 잘하더라고요.”

‘2세의 삶’에는 늘상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명창 아버지는 왕윤정에게 든든한 버팀목이면서, 넘어야 할 산이었다. 안팎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거웠다.

“저는 늘 원점이었어요. 누구 딸인데 잘하면 당연한 거고, 못하면 왜 못하냐고 하더라고요. 어릴 땐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게 쉽지 않았어요.” 학창시절 콩쿠르라도 나가면 수군거리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왕기철 선생님 딸도 나온대. 걘 당연히 붙겠지.” “예술엔 당연한 게 없는데” 노력은 배제된 시선이 따라붙었다.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럼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게, 악착같이 하자 마음 먹었어요.”

스승인 아버지는 사실 엄격했다. 왕 명창은 “딸이기에 기대치가 크고, 예술의 세계에선 스스로 인정받아야 하기에 더 냉정한 잣대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기대치가 채워지지 않으면 화가 나셨나봐요. 아무 말씀도 안 하는데, 아빠의 눈만 봐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왕윤정) 자기 자식을 제자로 두는 것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제 자식은 못 가르친다고 공짜 수강생이라 설렁설렁 했는지, 나중엔 집사람이 레슨비를 주더라고요. 윤정이한테도 신경 좀 쓰라고요.” (왕기철)

명성과 꼬리표가 아닌 스스로의 노력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착실히 걸어왔다. 딸의 노력에는 아버지가 걸어온 굴곡 많은 소릿길의 역사가 고스란히 쌓였다. 성악가로 치면 “테너의 음역과 목구조를 타고났지만” 가난이 가로막아 재능을 펴는 것이 쉽지 않았다. 2005년에는 위암 수술을, 2009년에는 성대결절 수술을 받으면서도 지켜온 길이다. 왕 명창은 “수술이 잘돼 98%는 돌아왔지만, 아직 나만 느끼는 찾지 못한 2%가 있다”고 말했다. 왕윤정은 항상 “아버지가 하신 것만큼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이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꼬리표는 평생 뗄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도 한 명의 예술가이고, 하고 싶은 예술이 있으니 조금씩 피어날 수 있게 쌓아가고 있어요. 한 번도 소리를 포기하고 싶다거나,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일 년 전 했던 소리를 다시 불렀을 때 결이 달라졌다는 걸 느끼면 엄청난 희열이 와요. 무언가를 채워갈 수 있다는 재미가 제겐 좋은 자극이 되고 있어요.”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딸을 보는 아버지의 눈빛이 애틋하다가도 다시 채찍을 든다. “소리를 냉정하게 제대로 듣는 관객의 귀가 엄청난 무서움이에요. 예술가는 평생 공부하고 노력해야 해요.” (왕기철)

소리꾼 부녀가 꾸는 꿈은 멀리 있지 않다. “예술의 길을 즐기는 명창”이 되길 바라는 스승이자 아빠의 마음과 “미래의 소리꾼들이 뛰어놀 수 있는 터전”이 돼주길 바라는 제자이자 딸의 마음이 만났다. 왕 명창 역시 “미래를 열어갈 소리 영재들에게 디딤돌을 놓아주는 것이 교육자로서의 바람”이다.

“어릴 땐 아빠가 무대에 선 절 걱정했는데 지금은 아빠가 틀릴까봐 걱정이에요. 점점 부모의 마음을 배워가고 있어요. 제가 더 많이 챙겨드릴테니, 건강만 하셨으면 좋겠어요.” (왕윤정) “딸, 아빠 더 많이 챙겨줘. (웃음) 동생 왕기석 원장네도 부녀가 소리를 하고 있어요. 언젠가 네 사람의 가족 무대를 올리고 싶어요.” (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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