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가 없었던 한족을 만들고, 그 한족들의 중국사를 창조했다. 그렇게 만든 한족의 천하사가 바로 ‘사기’다.”
중국 역사공정의 핵심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내에서 발생했던 모든 역사는 하화족(夏華族)의 역사’로 만드는 것이다. 하화족은 곧 한족을 가리키는데,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사기, 2천년의 비밀’(만권당)에서 한족은 사실 실체가 없던 것을 사마천이 창조해 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잘 알려진대로 중국 역사의 시작은 삼황 오제다. 삼황은 본래 복희, 신농, 황제를 말하는데 사마천은 신농, 복희씨가 동이족임이 명백한 것을 알고 삼황을 지우고 황제를 중국 역사의 시작으로 삼아 ‘사기’를 서술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만들어진 역사의 의심사례로 ‘오제본기’의 한 대목을 꼽는다. ‘황제의 정비 누조가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첫째가 현효인데, 이이가 청양이다’라는 구절이다.
현효 청양에 대해 당나라의 사마정은 사기 주석서인 ‘사기색은’에서, “상고해 보니 황보밀과 송충은 모두 현효와 청양은 곧 소호(少昊)라고 말했다”고 전하는데, 풀이하면 황제의 맏아들 현효가 소호 김천씨라는 뜻이다. 소호 김천씨는 ‘삼국사기’‘김유신 열전’에 나오는 인물이다.
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소호 김천씨의 후예로 인식한다는 것이고, 김유신의 선조들인 가락국 사람들도 헌원(황제)과 소호 김천씨의 후예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마천은 소호라는 잘 알려진 이름 대신 현효라는 알려지지 않은 이름을 썼다며, 소호 김천씨는 너무나 유명한 동이족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사마정은 이런 사마천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했다. ‘사기색은’에서 ‘삼황본기’를 작성, ‘오제본기’ 앞에 수록한 것이다.
이 소장은 사마천이 삼황의 세 번째였던 황제를 떼어내 첫머리로 삼으면서 황제와 치우의 싸움도 조작했다고 본다. 황제와 치우의 싸움은 동이족 내부의 다툼이었지만 동이족임이 널리 알려진 치우와 싸운 황제를 하화족의 시조로 만들어 하화족의 천하사인 ‘사기’를 저술했다는 것이다. 즉 이는 역사를 저술한 게 아니라 역사를 만든 것이란 주장이다.
저자는 사마천이 황제부터 한나라에 이르는 과정을 편년체가 아닌 기전체라는 형식을 택한 것도 본기-표-서-세가-열전의 서술 체계를 통해 역사의 정통성과 체계적인 계통을 수립하고자 한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저자는 중국학자들이 하왕조가 스스로를 중앙의 대국으로 인식하면서 하를 중국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하나라 때는 화이 개념이 없었다는 주장도 편다. 동이족의 한 갈래인 주족이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자신들이 사는 낙양 일대인 하락지구를 천하의 중심, 중국(中國)으로 인식하면서 화(華)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는 물론, 사기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가진 주석의 집대성인 ‘삼가주석(三家註釋)’과 일본의 다키가와의 ‘사기회주고증’까지 면밀히 살폈음을 밝히며, 사마천이 그토록 지우려고 애썼던 동이족의 관점에서 ‘사기’를 바라본 최초의 저작이라고 강조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사기, 2천 년의 비밀/이덕일 지음/만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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