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40대 중반에 이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긴 어려워 보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4)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다. 러시아의 무차별 침공에 맞닥뜨린 처지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저 그런 공격이 아니다. 소비에트연방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벌이는 역사적 전쟁의 중심에 그가 서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 사흘째를 맞는 26일(현지시간) 오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새 영상에서 “우린 무기를 내려 놓지 않을 거다. 우리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이 무기를 내려 놓으라고 항복을 요구했지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는 수도 키예프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을 배경으로 촬영한 이 영상에서 “내가 무기를 버리고 (항복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거나 피신이 진행 중이라고 하는 많은 가짜 뉴스가 돌고 있다. 난 여기에 있다”며 “우리의 무기가 우리의 진실이다. 진실은 여긴 우리 땅, 우리 조국, 우리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지난 24일 밤 진행한 유럽연합(EU) 정상들과 영상회의에선 “이게 아마도 여러분이 살아 있는 나를 보는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가 2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자국민에겐 단합을,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할 외국 정상엔 사즉생의 뜻을 전달한 셈이다.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미국 등의 정보와 경고에 대해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무시한 전력 때문에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은 비판받았지만, 벼랑 끝에 선 상황에서 결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불과 3년여 전엔 가당치 않은 장면들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인기있는 코미디언 가운데 하나였다.
‘국민의 종(Servant of the People)’이란 드라마가 인기를 끈 덕분에 정치에 입문했다. 우크라이나의 부패를 풍자하고, 민주주의에 도전하면 나라가 어떤 모습일지 보여준 게 현실 대중에 먹힌 결과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의 남동부에서 자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약 3시간 전, 러시아 국민을 향해 전쟁을 막아달라고 하는 호소 연설을 유창한 러시아어로 하기도 했다. 파국만은 막겠다는 마지막 시도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선거 운동 기간 우크라이나의 부패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이고르 콜로모이스키의 자금지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콜로모이스크의 ‘꼭두각시’가 될 거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그는 과두정치에 반대하는 역량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러시아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한 민족주의자로 변모한 것과 유사하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의 우크라이나 전문가 니나 얀코비치는 “많은 전문가가 젤렌스키를 정치적 경험 부족과 연예계 배경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하지만 젤렌스키는 사실 유능한 정치 배우”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날 미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군에 체포되거나 살해될 위협에 처했다며 피신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독립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키예프에 남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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