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신작 ‘리어’…3월 17~27일
서양고전에 우리 언어·소리 입힌 작품
화려한 창작진·간판스타들 총출동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이 창극으로 다시 태어난다. 증오와 광기, 파멸을 다룬 탓에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이야기”(배삼식 작가)로 꼽힌다. 서양의 고전에 우리의 언어와 소리를 입힌 작품은 ‘창극의 현대화’ 작업을 이어온 국립창극단이 맡았다. 신작 ‘리어’(3월 17일부터·국립극장 달오름극장)는 곳곳에 동서양이 묻어났고, 익숙한 서양 고전이 가진 고정관념을 깼다.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23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복장 터지는 일이 많고, 인간의 욕망과 추악한 욕심을 만나게 되는 요즘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뭐가 있을까 고심하다 ‘리어’를 창극단의 신작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리어왕’을 창극화하기 위해 화려한 창작진이 뭉쳤다. 무용·연극·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는 정영두가 연출과 안무를, 극작가 배삼식이 극본을 맡았다. 음악은 창극 ‘귀토’,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에서 탄탄한 소리의 짜임새를 보여준 한승석이 작창하고,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이 작곡을 맡았다.
극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다진 것은 배삼식 작가다. 국립창극단과 ‘트로이의 여인들’, ‘귀토’ 등을 함께 작업해온 배 작가는 삶의 비극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우리의 언어로 풀고, 동양 철학인 노자의 사상을 엮었다. 그는 “‘리어’는 우리 모두가 잊고 싶고,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읽으며 ‘천지는 불인하다’는 노자의 짧은 한 구절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이 세계는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 어질지 않다, 잔혹한 것이라는 노자의 이야기처럼 셰익스피어 역시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아름답고 따뜻한 작품이 아닌 인간 존재의 애달픔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으로 봤어요. 삶의 진면목은 명명백백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어둑한 곳에 있다는 노자의 철학을 ‘리어’의 세계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적 말맛’으로 토양을 다진 극본 위에서 창극으로 꽃을 피운 것은 음악이다. 한승석, 정재일 음악감독은 판소리를 중심에 두면서도 전통에서 확장해 동서양이 조화를 이룬 음악을 만들었다. 한 감독은 “광기, 파멸, 증오, 배신 등 텍스트가 담은 정서가 전통 판소리와는 결이 달라 그것을 우리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며 “전통 판소리에서 조금 벗어나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음악적 어법의 확장이 이어지며, 새로운 영역이 개척됐다”고 말했다.
작품은 “시간이라는 물살에 휩쓸려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2막 20장에 걸쳐” 그린다. 탐욕스러운 두 딸에 의해 처절하게 내몰린 후 막내딸 코딜리어의 진심을 깨닫는 리어, 두 눈을 잃고 비로소 장남 에드거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게 되는 글로스터의 이야기가 ‘리어’를 이루는 커다란 두 세계다.
창극단의 간판스타들이 총출동해 ‘리어’는 한층 젊어졌다. JTBC 소리꾼 경연 프로그램 ‘풍류대장’을 통해 최종 2위에 오르며 대중적 인기를 얻은 김준수가 리어를, 익살스러움과 재기발랄함으로 무대를 장악해온 유태평양이 글로스터를 맡았다. 두 배역을 노년의 배우가 연기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캐스팅이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집중해 분노, 회환, 자책 등 복잡다단한 감정으로 무너지는 인간의 비극을 표현”하는 데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김준수는 “리어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제가 하는게 맞나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생각하기 보다는 해내고 싶다는 마음과 고민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이미지나 나이와 관계없이 리어라는 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집중하면서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끌어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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