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재재단 협상

사라진 경위는 여전히 미궁

260년간 잘 있다가 28년전 돌연사라졌던 묘지석이 미국에 있었다. 미국측도 순순히 무료반환했다. (책 아님 주의)
260년간 잘 있다가 28년전 돌연사라졌던 묘지석이 미국에 있었다. 미국측도 순순히 무료반환했다. (책 아님 주의)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에서 소장하던 ‘백자청화이기하묘지(白磁靑畵李基夏墓誌)’ 18점이 2022년 2월 8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묘지석이지만 예술품 같은 자태다.

매매나 기증 없이, 담판에 의해 무료로 귀환했다. 만들어진지 260년간 잘 있다가, 28년전 돌연 증발된 남의 집안 조상 추모 묘지라서, 미국 미술관측도 군소리 없이 내주었다. 28년전 어떤 경로로 사라졌는지는 여전히 미궁이다.

묘지는 죽은 사람의 행적을 기록한 돌이나 도판(陶板)으로, 지석(誌石) 또는 묘지석이라고도 불린다. 무덤 내부에 관과 함께 묘지를 매장하는 것이 조선의 중요한 추모 관행 중 하나였다. 이 묘지는 조선 후기 훈련대장과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이기하(1646-1718)를 추모하는 기록으로, 가족사에서 정치적 업적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백자청화이기하묘지의 글은 조선 이조좌랑을 역임한 문신 이덕수(1673-1744)가 쓴 것으로 그의 문집 ‘서당사재(西堂私載)’에도 수록돼있다.

총 18매로 구성된 이 묘지는 백토를 직사각형의 판형으로 성형하여 청화 안료로 글씨를 썼다. 판의 우측 단면에는 묘주의 관직 및 이름과 함께 총 매수 중 몇 번째인지 쓰여 있다. 묘지가 제작된 연대(1734)도 알 수 있다. 청화 발색이 선명하며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1734년 만들어진 묘지석
1734년 만들어진 묘지석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 이하 재단)은 2015년과 2016년 2년에 걸쳐 진행한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한국문화재 실태조사 시 이 묘지를 확인하였고, 2020년 보고서 발간을 준비하며 한산 이씨(韓山李氏) 문중이 원소장자임을 알게 되어 이를 문중에 알렸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은 재단과의 협의를 통해 본래 이기하 묘소에 묻혀있던 ‘백자청화이기하묘지’를 한국에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이기하의 묘소는 원래 시흥군 향토유적으로 1988년부터 지정 관리되다가, 1994년 경기도 이천으로 이장하였는데, 이때 이한석씨가 묘지를 수습하였다. 당시 묘지는 이장한 묘에 함께 묻지 않고 한산 이씨 문중의 원로가 보관하다가 이후 분실되었다. 묘지는 1998년 미술관에 기증되었는데, 미술관은 2020년 말 재단을 통해 이한석 씨로부터 연락을 받을 때까지 묘지와 문중이 분실한 내용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이를 알게 된 미술관은 한산 이씨 종중 대표인 이한석 씨에게 묘지를 돌려주기로 합의하였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묘지 인계인수식. 260년 잘 있던 가문의보물이 왜 20여년전 사라졌는지 여전히 미궁이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묘지 인계인수식. 260년 잘 있던 가문의보물이 왜 20여년전 사라졌는지 여전히 미궁이다.

이 미술관에서 한국 소장품을 담당하고 있는 임수아(Sooa Im Mccormick) 학예연구사는 “백자청화이기하묘지〉는 그 역사적 가치와 단정한 글씨로 관람객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던 유물”이라고 전했다.

후손 이한석씨는 현재 이기하 선생의 묘소가 충남에 있는 것을 고려하여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원장 조한필) 산하 충청남도역사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4월 초 기증행사와 특별전시회를 통해 공개된다.


abc@heraldcorp.com